유럽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
당연한 것도 의심하는 학자들이 모인 곳이니, 학계라는 곳도 보수적이지 않을 리가 없다.
유럽 학계에서, 동양인 40대 여성이 아이 둘 키우면서 학자로 살아간다는 것, 그건 즐거운 것들을 끊임없이 제한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 좋아하던 술도 거의 안 마신다. 친구도 아주 제한적으로 만난다. 한 달에 한 두 번만, 약속을 만든다. 영화, OTT, 음악 듣기는 물론 쇼핑도 월례 행사다. 왠만하면 안 보고 안 한다. 머리를 식힌다고 하는 유일한 취미활동이 바로 여기,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다. 그야말로 따분하고 재미없는 인생을 사는구나, 라고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그러는 것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사람마다 속도는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마흔넷이 넘으니,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어느 정도 분간할 수 있게 되었고, 큰 부자는 되기 어렵겠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부귀영화 같은 단어는 이미 리스트에 없다.
현상 유지를 하는 것이 목표다. 물 흐르듯 가는 것, 막혀있지 않는 것, 그게 솔직한 목표다. 보통의 삶을 사는 것, 현상이라도 유지하려고 하는 것도 나에게는 엄격한 제한이 필요했다. 꽤나 게으르고, 쉽게 좌절하는 성향이고, 술을 마시면 더 빠르고 깊게 무너졌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스스로를 몰아쳐야 하고, 나의 보살핌을 크게 필요로 하는 3살과 14살 아들 둘을 배달음식 없이 키우려다보니 늘 치타처럼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시간만큼 소중한 자원이 따로 없고, 하고 싶은 것은 왠만한 건 다 제한해야 겨우 보통의 가족처럼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
제한으로 가득한 일상이 답답하던 차, 학교의 미식(gastronomy) 과정을 담당하는 교수님의 샴페인 강의를 들을 일이 있었다.
샴페인은 겉으로는 화려한 축하의 술이지만, 본질은 제한의 술이다. 즉, 샴페인이라는 브랜딩을 받쳐주는 규제가 없었다면, 지금의 샴페인은 없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샴페인은 1년에 수확할 수 있는 포도의 양을 제한한다. 샹파뉴 지역에서 나는 포도로만 만들어야 샴페인으로 '부를 수' 있다. 샹파뉴 지역이 아니면 그건 샴페인이 아니라, 스파클링이다. 샴페인은 생산량도 와인에 비해서는 턱없이 작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만나는 버블이 있는 알콜은 스파클링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샹파뉴 지역의 포도는 허가 받은 곳에서'만' 기를 수 있다. 심지어, 가정집에서 포도를 기르는 것도 안된다. 만약 뒷뜰에서 샴페인 품종 포도를 기르다가 지나가던 사람이 보고 신고라도 하는 날엔, CIVC (샹파뉴 지방에서 샴페인 관련 일을 하는 협회)가 나타나서 포도나무를 기어이 파내고야 만다.
돈이 좀 있다고 하여 샹파뉴 지역에서 샴페인 도멘을 쉽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6만명 가량 되는 재배자가 샹파뉴 지방의 90%의 면적을 차지하고 포도를 재배하거나 샴페인을 만든다고 한다. 몇 다리 건너면 서로 알 수 있다고 하며, 매우 닫힌 사회라고 할 수 있다. 1 헥타르(ha)에 1.5백만 유로 가량 하는데, 1 헥타르로는 어림도 없으니, 꽤나 부자여야 한다. 하지만, 돈 싸들고 간다고 한들, 샴페인 와이너리를 누군가 팔아주지도 않고, 설령 산다고 해도 관련 인증이 까다롭고 신고 절차도 복잡하다.
멀리서 보면 반짝이는 샴페인도, 가까이서 보면 제한 투성이다.
즉, 규제와 규칙, 닫힌 사회 속에서 지켜낸 결과물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샴페인’이라 부르는 특별한 술이다.
삶도 그렇다. 화려하게 보이든 소박하게 보이든, 우리가 지켜내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 뒤에는 반드시 제한이 따라온다.
샴페인처럼 사는 게 꼭 답은 아니다. 때로는 스파클링처럼 흉내만 내도 충분하다. 다만, 내가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떤 제한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잊지 않고 살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