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 weeks
우리는 모든 것을 해낼 수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니, 무얼 포기하고 어떤 것을 버릴지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버리지 않고선, 원하는 것으로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늘 말이 쉽다.
정작 나는, 다 껴안고 산다. 아무것도 못 버린다. 하나를 쳐내면 세 가지 할 일이 올라온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내려고 바등거린다. 우선순위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해결 모드로 들어간다.
맨날 바쁘고 자주 피곤하다. 체력이 바닥난 밤에는, 짜증도 쉬이 올라온다. 그러다 방전되면 다 제치고 하루 종일 누워있다.
문제가 있다.
하지만, 대책은 없었다. 어디까지 버티나 한 번 해보자, 할 수 있다는 막연한 다짐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이렇게 쥐어짜지 않으면, 적당히 하거나 탁 놓아버리게 될 것 같은데, 그 어느 것도 답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다, 세 살 둘째에게 별 일도 아닌데 크게 화를 냈다. 봉막셰 백화점에 벽시계를 사러 갔는데,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먹을 것이라도 건지자 라는 마음으로 0층 식품관에서 장을 보기 시작했다. 피곤했고, 빨리 계산해서 어서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런 나의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아이는 카트를 끌고 기어이 엘레베이터를 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래, 그 엘레베이터. 한 번 타자, 해서 탔는데 아이는 장난치며 카트를 계속 흔들었다. 그럴 일은 아니었지만, 실로 큰 짜증을 내면서 호통을 쳤다. 아이는 크게 울었다. 먹을 것은 아무 것도 못 사고 구겨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건 아니다. 이렇게 너덜너덜 살 거면 열심히 사는 것이 무슨 의미람.
시계 사러 왔다가 빈 손으로 가면 다음에 사면 되지. 뭐라도 사서 가는 것이 생산성이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처리'하지 못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어이 '구매'라는 행위를 해야 그 시간이 허무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화를 낸 뒤 알게 되었다. 생산성에 집착하다가 진정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고, 그 끝은 공허하기만 하다는 것을.
문제가 심각하다.
그래도 잘 살아보라고, 누군가 던져주듯. 우연히 두 가지 문구를 접했다.
80살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우리에겐 4000주가 주어진다는 것.
모 의사가 본인 인생을 바꾼 질문이 "10년 뒤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한 것.
앞으로 10년이면 몇 주가 있는 것일까?
대략 521주이다.
"521주 뒤에 어떻게 살지? 생각한 대로 살기 위해서, 521주 동안 무얼 해야하지?"
당장 내일 일도 걱정인데, 521주는 참으로 긴 시간이다. 하루하루는 열심히 살아도,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살라고 누가 그랬는데.
아니다. 인생 전체가 되는 대로 되는 것은, 삶의 방향/목적을 갖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과정을 즐기되,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맞네, 맞아.
나는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더라도, 큰 꿈을 꾸기로 했다.
닿지 못한다 해도, 그 길을 걷는 동안 나는 분명 변할 것이고, 변한 만큼의 내가 남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노력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과정을 거치며, 진짜 나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은 빨리 스러지지만, 행동은 마음 속에 각인되고, 글은 물리적으로 남는다. 그러니, 10년 뒤의 삶을 적고, 생산성보다는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그냥 하면 된다.
521주는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다. 다만, 소중할 뿐이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붙들고 있을 것인지. 어떤 시간과 마음으로 하루씩 채울지, 그 답을 찾으며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