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까지 프랑스는 스키 바캉스 기간이다. 보드를 타던 나는 스키로 전향을 하려던 찰나 귀여운 똥싸개 두찌가 모습을 드러내어, 이번 겨울엔 첫찌만 스키캠프를 보냈다.
첫찌는 예민한 편에다가 감정선이 나와 달리 매우 섬세하다.아직 어려서 그런지 기억력도 좋다. 내가 서운하게 한 일들은 또렷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아이다. 또 나와는 다르게 새로운 도전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 캠프도 친한 친구가 간다고 하니 마지 못해 나섰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도 의미없는 도전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가기 전날 또 갑자기 가기 싫다고 서럽게 울기까지 했다.
없는 살림이지만 방학에 집에만 있으면 의미없으니특별히 보내는데 왜 안간다는 거야, 진심 반 걱정 반 섞인 화도 냈다. 12살 짜리를 (안전하게 다녀오겠만) 막상 혼자 보내니 나는 매일 말도 안되는 걱정에 휩싸였는데 그런 나를 보고 있자니 스스로도 꽤나 당황스러웠다.
파리에서 이태리 피에몬테까지 10시간 버스를 타고 갔다. 출발하는 날 새벽 6시에 급하게 나가느라 장청소 해결을 못하고 나갔는데, 큰 아이는 장에서 신호가 오면 참기 힘들어 한다. 시간도 짧게 걸리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보니, 휴게소에서 혼자 화장실에서 큰 일 보다가 버스가 출발해 버리면 어쩌나.. 10시간 내내 걱정이 됐다.
유럽의 스키장은 한국처럼 펜스가 쳐져 있다거나, 고개를 스윽 돌리면 슬로프가 한 눈에 다 들어오는 구조가 아니다. 자연 속에서 울창한 산림 속에 실제 눈을 지치면서 즐기는 것이고, 지도를 들고 다니거나 앱으로 길을 찾으면서 다녀야 한다. 총 길이 10km이상 되는 산길을 내어 만든 스키장이라고 하니, 산 속에서 스키 타다가 혼자 길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나중에 들어보니 실제로 스키타다가 숲 속에서 혼자 길을 잃었었다고 한다. 30분 정도 그 자리에서 계속 기다렸고 극적으로 구조(?)가 되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를 했다. 듣자마자 머릿 속이 아뜩해졌는데 본인은 쿨하게 가볍게 얘기하고 넘어간다. 10대의 특권인 겁없음과 객기를 부리다가 혹시라도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모든 순간이 걱정투성이었다.
이렇게 걱정할거면 왜 보냈을까 같은 자포자기의 체념에 이르자, 먼 미래로 확장된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장가가면 진짜 매일 너무 궁금할 거 같은데 어쩌나… (이건 정말 여러 명 소름끼칠 생각이다. 정신차려야지) 같은 세상 쓸모없는 걱정에 빠지기도 했다.
핸드폰도 급하게 구해서 들려 보냈는데, 카톡에는 죄다 재미없다, 다신 안올거다, 투성이에 그나마도 대여섯 시간 뒤에나 겨우 단답식이다.
아이는 재미없게 보내고 나는 집에서 일도 손에 안 잡히고 걱정하고.
보낸 것을 며칠간 후회했다. 군대갈 때까지 끼고 살아야겠단 (살고 싶단) 생각도 잠시 했다.
감사하게도 건강히 잘 돌아왔고 본인은 재미없었고 너무 힘들었다는 투덜투덜 일색이었지만, 다른 엄마 통해서 받은 사진들과 이야기을 들어보니 아이가 이렇게 표리부동할 수가 없다. 아주 매우 엄청 신나게 잘 놀았다는 것이다.
사진마다 웃고 있고, 매일 저녁 나온 파스타는 너무 맛있었고, 스키는 점프까지 배워서 재밌었고, 단짝들 넷이서 잘 때 말고는 계속 붙어다녔댄다.
오히려 문제는, 일주일동안 양치를 한 번도 안한 사건에 있었다. 싸준 칫솔이 출발한 날과 동일한 상태로 돌아와서 추궁 끝에 알아냈다. 그리고 그날 밤, 치실로 스케일링급의 시술을 해야만 했으니. 한두 개 이빨이 썩는대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동안 했던 근거없는 걱정들의 에너지가 썩기 직전의 이빨, 그리고 징징댔지만 사실은 즐거웠던 캠프라는 소재로 옮겨가자, 느낀 바가 생겼다.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다. 가두리 양식으로 키울 수 있던 어린 아이가 아닌 것이다. 나 때문에 어릴 적 마음 고생을 많이 한 자식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훌쩍 커버린 모습이 요즘 유독 애틋하다. 그래도 가는 시간을 막을 장수는 없고, 아이는 흘러가는 시간에 비례하여 크기 마련이다.
아이가 있다는 건, 심장을 밖에 내놓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걱정이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도움이 되려면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걱정하고 화낼 시간 있으면, 스스로 할 수 있게끔 방향을 제시하고, 양치 같은 건 엄마가 없어도 해야한다는 당위성을 이해시키고, 길을 잃었을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매뉴얼을 알려줬었어야 했다. 걱정할 시간에 내 삶을 더 충실히 살아서 멋있는 엄마가 되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