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린 Sep 26. 2021

진짜 나쁜 사람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이는 곳이 조직인데, 한 업계에서 악명 높았던 ‘거미’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녀의 직책은 마케팅 상무였는데, 거친 욕을 하지 않으면서도 듣는 사람을 깔아뭉개서 듣는 사람을 분노케 했다.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상냥하지 않은 태도를 보이면 그녀는 격노하곤 했는데, 특히 본인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인사팀에 들어가는 날이면 모두에게 제삿날이었다. 우선, 한 명씩 호명되면 그녀의 사무실에 문 닫고 들어가야 한다. ‘이런 소문이 있다는데, 들어봤냐. 들어봤다면 누구한테 들어봤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OOO가 이 이야기를 했다는 소문이 있다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OOO가 나에게 요즘 불만이 있냐, 그래서 너는 이 소문이랑 비슷한 것을 들어본 적이 있냐. 그럼 어떤 소문을 들었냐.’와 같은 유도심문을 인당 1시간씩 당하고 나와야 했다. 하루에 8시간이니 일주일간 사무실의 대부분 인력이 돌아가면서 고문을 당하고 나오면 밀린 일은 고스란히 야근의 몫이니, 일주일이 길고 괴로웠다. 생물체라곤 반려동물 한 마리도 키우지 않았던 그녀는, 젊은 직원들이 일찍 퇴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제 시간에 퇴근한 직원 모니터에 ‘너 집에 일찍 가더라’ 라는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평일 밤 11시이든, 주말이든 상관없이 궁금한 것이 생기면 바로 전화를 돌렸다. 직원이 전화를 못 받으면 바로 문자를 보내서 ‘급한 일 없으면 전화 요망’이라고 남겼다. 그날 통화를 해야 다음날 화를 면하니, 술로 떡을 빚다가도 콜백을 해야 했다. 전체 회의에서 본인 팀 직원이 발표를 하면, 세 문장을 다 못 듣고 끊고 들어가 딱히 쓸모도 없는 부연 설명을 추임새로 넣기도 일쑤였다. 마흔 명 가량 되었든 그 회사에서,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뒤에서 그녀에 대한 담화를 했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그녀도 그런 분위기를 모르진 않았다. 동정표를 얻고 싶었던 날(점심 약속이 없는 날)은 ‘미움받을 용기’ 같은 책을 팔에 끼고 다니면서 각 팀을 돌아다니며 요즘 읽는 책이라며 혼자 크게 웃었다. 


        상사가 쌍욕이라도 해야 고소를 하거나 녹음해서 언론사에 제보를 하는데, 사람 속은 다 뒤집어 놓지만 같은 조직내의 사람이 아니면 듣는 사람은 그 심각성에 대해 완벽히 공감하기 어려운. 그런 어려운 부류였다. 특정 직원이 본인 마음에 안 들면, 그 직원이 퇴사를 할 때까지 괴롭혔다. 마치 거미가 거미줄에 걸린 먹이를 실로 돌돌돌돌 말아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 후, 꿀물은 빨아먹고 죽여버리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었다. 결국 숫자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데, 심지어 2년간 20명 정도의 직원이 그 사람을 견디기 어려워서 퇴사한다고 인사팀에 보고가 되었다. 경쟁사 임원들도 그녀에 대한 소문을 들을 때면 ‘그 사람이 뭐라고 하든 한 귀로 흘려보내야 한다’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희안하게도, 그녀의 커리어는 한동안 무사했다. 그 회사에 워낙 오래 다녀서 그렇다는 설도 있었고, regional 오피스에 잘 보였다는 설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설은 사장과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 20년 가까이 같이 일을 했기에, 사장이 그녀를 향한 왠만한 비난에는 들은 척도 안 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닭과 달걀의 관계라고들 했지만, 해외 출장을 가면 그녀는 사장 부인의 속옷을 사서 선물했다고 한다.  


         그녀를 직간접적으로 아는 수많은 사람들의 안주거리에 대해 길게 설명했지만, 요는 적어도 수십 명에게 그 사람은 매우 나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쁜 사람을 엄청나게 씹어댈 때, 우리는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누구나 갖고 살았다. 공동의 적이 있고, 같이 욕할 사람도 차고 넘쳤고, 그 사람의 ‘악’에 대비해 우리의 ‘악’은 작고 귀여웠다. 


         엄마도 우리에 속해 좋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굳게 믿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네가 엄마에게 전해준 메모는 그 믿음을 산산조각 내기에 딱 좋았다. 업무 시간에만 보면 되고, 회사를 그만두면 안 만나도 되는, 그런 거미 같은 부류가 끼치는 악의 영향력과는 비교가 안되었다.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엄마가 너무한 점다 엄마 마음대로다협박한다화풀이를 나한테 한다무시한다거짓말쟁이다보지도 않고 화낸다비교한다자기만 잘난 줄 안다.” 


        아니, 진짜 나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다 열거해둔 메모가 아닌가.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이건 우리가 거미를 욕할 때 사용했던 말들이었다. 거미는 아마 본인의 지위를 잃는 것이 두려워 타인에게 오만을 휘둘렀을 것이다. 본인 내키는 대로 하면서, 화가 나면 화풀이를 눈에 보이는 대상에게 하고, 필요에 따라 거짓말을 일삼고, 일단 화부터 내고 보며, 나 말고는 다 못난 것들 투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혹은 더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몰랐을 수도 있다. 또는, 응당 팀장 이하 아랫것들은 상무에게 잘 해야지 라는 구한말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서 그랬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유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 


        아들, 세상에 실력이 없는 오만한 부류는 많아서, 그런 사람들에게 일일이 마음을 쓰면 중요한 일, 그리고 큰 일을 할 수가 없다. 진정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게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는 너의 눈이고, 너의 실력이다. 스티브 잡스처럼 실력과 선견지명이 있는데 오만하면 참고 견딜지 ‘선택’하면 되고, 없는 실력을 감추기 위해 오만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다면 가능한 빠르게 도망가야 한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알아보는 너의 실력이다. 


        동시에, ‘내 눈에 대들보, 남의 눈의 티끌’이란 문장이 떠올랐다. 강력한 악인을 욕할 때 우리는 하나가 되고 소속감을 느끼며, 일종의 ‘선한’ 집단이 되어 우리 눈의 대들보를 보지 못한다. 다행히도, 엄마 눈의 대들보를 다른 사람이 아닌 아들이 이렇게 알려주는구나. 엄마의 부족한 말과 행동들을 이렇게 일반화시켜 절대 악인으로 부활시킨 너의 표현력에 놀랐다. 그리고, 부끄럽고, 또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