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창고를 열어 보았다. 박스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맥주와 음료였다. 행사 때 넉넉하게 준비했다가 남은 것들이다. 박스를 하나 열어보니 유통기한이 이미 지난 것도 있었다. 행사가 끝나면 늘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혹시 부족할까 봐 물건은 넉넉히 준비하고, 행사가 끝나면 조금 남는다. 처음에는 “다음에 쓰면 되지” 하고 창고에 넣어둔다. 하지만 그 ‘다음’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물건의 존재를 잊는다. 그러는 사이 창고에는 누군가 언젠가 쓰려고 남겨 둔 물건들이 조용히 쌓여 간다.
나는 담당자에게 물었다.
“이거 언제 들어온 거예요?”
잠시 생각하던 담당자가 말했다.
“제가 오기 전부터 있던 거라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조직에서 자주 듣는 말이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그렇게 해왔습니다.” “원래 있던 겁니다.” “제가 오기 전부터 있던 일입니다.”
그 말들은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들이 반복되는 순간 어떤 일들은 마치 주인이 없는 것처럼 남게 된다.
누가 샀는지, 왜 이렇게 많이 준비했는지, 지금 얼마나 남아 있는지.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행사가 생기면 다시 물건을 주문한다. “혹시 부족하면 안 되니까요.” 그리고 남은 물건은 다시 창고로 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창고를 한 번 정리하자고 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은 폐기하고, 남은 것은 다른 기관에서 필요할지 물어보고 전달하자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일이겠지만 이런 일들은 조직 안에서 자주 반복된다.
어떤 일은 시작한 사람이 떠나고 어떤 물건은 쓰지 않은 채 남아 있고 어떤 방식은 이유도 모른 채 계속 이어진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제가 오기 전부터 있던 일입니다.”
하지만 조직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누가 시작했는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행사가 끝나면 남은 물품을 정리하고, 창고에 무엇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쓸 수 있는 것은 다른 곳과 나누는 일. 거창한 일이 아니라 작은 기준 하나를 세우는 일이다.
조직은 거창한 계획으로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작은 방식 하나를 바꾸는 것에서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어떤 일들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갈 방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