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관에는 격년마다 진행되는 큰 행사가 있다. 규모도 있고 준비할 것도 많아서 몇 달 전부터 움직여야 하는 행사다. 올해 담당자는 1년 전에 새로왔지만 산하 기관에서 근무해 온 직원이다. 그에게는 이번이 처음 맡는 행사다. 그래서 운영계획안을 한 번 정리해 보자고 했다. 행사가 아직 멀었지만,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계획안이 올라왔다. 생각보다 빨랐다. 문서를 열어 보았다. 어디선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읽어 내려가다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용이 거의 그대로였다. 예전에 작성된 계획안을 그대로 두고 연도와 숫자만 바뀌어 있었다.
“크게 달라지는 내용이 없어서요.”
담당자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문서를 보았다. 그런데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뭐죠?” 잠시 보던 담당자가 말했다.
“아… 그건 오타입니다.”
오타일 수도 있다. 정말 단순한 실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서를 덮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보았을까.
행사는 격년으로 열린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는 늘 처음인 행사다. 그래서 더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일이다.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 그런데 문서를 보면서 어딘가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나도 잠깐 고민이 생겼다. 이걸 내가 어디까지 봐야 할까.
팀장 리더십에 관한 강의나 책을 보면 비슷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팀장은 사소한 일까지 하지 말아야 한다. 팀원이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팀원의 역량이 성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 대충 올라온 일들. 어딘가 빠져 있는 생각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팀장이 하게 되는 고민. 이걸 다시 돌려보내야 할까. 아니면 내가 정리해 버릴까.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다음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래서 문서를 다시 넘겨주었다.
“예전 계획안이 아니라 이번 행사를 처음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해 봅시다.”
아마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이다. 어쩌면 나에게 다시 질문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팀장의 일은 모든 일을 빨리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일을 생각하도록 만드는 일이기도 하니까.
가끔은 내가 직접 하는 것보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 팀을 만드는 길일 때도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