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사람들과의 거리가 묘하게 달라졌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가까워진 것도 같고, 동시에 더 멀어진 것도 같다.
예전에는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책임과 의무를 전제로 했다.
자주 만나야 했고, 서로의 삶을 깊이 알고 있어야 했으며, 때로는 원하지 않는 자리에도 함께해야 했다.
그 안에서 공동체는 유지되었지만, 그만큼 부담도 함께 존재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
필요할 때 연결되고, 괜찮을 때만 머물며, 힘들면 조용히 빠져나온다.
이른바 ‘느슨한 연대’다.
처음에는 이 변화가 낯설었다.
“이렇게 느슨해서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을까?”
“이건 관계가 아니라 그냥 스쳐가는 연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사회복지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어르신,
관계를 부담스러워하는 청년,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지쳐버린 이용자들.
이들에게 ‘함께 하자’는 말은 때로는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부담이 된다.
정기 모임, 지속적인 참여, 공동체 의식…
좋은 말이지만, 그들에게는 너무 무거운 요구일 수도 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다.
“우리가 말하는 공동체는 누구를 위한 공동체인가?”
카리타스는 늘 ‘연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연대는 결코 사람을 묶어두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카리타스의 연대는 강요가 아니라 초대여야 한다.
필요할 때 와도 되고, 잠시 머물다 가도 되고, 말없이 있어도 괜찮은 자리.
어쩌면 지금 시대의 연대는 ‘깊게 붙잡는 관계’가 아니라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느끼는 또 하나의 변화는, 사람들이 완전히 고립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여전히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원한다. 다만,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부담 없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 없이, 그저 필요할 때 닿을 수 있는 거리를 원할 뿐이다.
이 지점에서 카리타스의 또 하나, ‘보조성’이 떠오른다.
우리는 종종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 사람들을 더 가까이 끌어당기려 한다. 하지만 보조성은 말한다.
“필요 이상으로 개입하지 말라.” 느슨한 연대는 어쩌면 이 보조성의 원칙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된 모습일지도 모른다. 너무 가까이 오지 않아도 괜찮고, 그러나 완전히 멀어지지도 않는 거리.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조금 더 자유롭게 숨을 쉬고, 조금 더 편안하게 관계를 이어간다.
요즘 나는 공동체를 이렇게 생각해본다.
함께 밥을 먹지 않아도,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늘 곁에 있지 않아도, “필요할 때, 기꺼이 서로를 향해 걸어갈 수 있는 관계.”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공동체가 아닐까.
그래서 사회복지의 역할도 조금은 달라져야 한다. 사람들을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길을 놓아두는 것. 참여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추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이 지금 그 자리에 머물 수 있도록 조용히 옆에 있어주는 것.
카리타스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 사랑은 때로는 손을 꼭 잡는 것이고, 때로는 한 걸음 물러나 기다리는 것이다.
느슨한 연대의 시대.
어쩌면 우리는 더 약해진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현장에서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괜찮습니다. 필요할 때, 언제든 다시 오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