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무엇을 하는가’에는 익숙해지지만,
‘왜 이 일을 하는가’는 잊어버린다.
사회복지 생활시설의 하루는 반복된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돕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기록을 남긴다. 분주한 일과 속에서 일은 점점 익숙해지고, 익숙함은 때로 의미를 지워버린다. 그때 필요한 것이 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다시 꺼내게 하는 것이 바로 ‘정체성 교육’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왜 이 일을 하는지를 묻게 하는 교육’이다.
이 교육이 살아 있는 현장에서는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 종사자들은 더 이상 자신의 일을 단순한 돌봄이나 관리로 보지 않는다. 눈앞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에도 의미를 묻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한 장애인거주시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곳에서는 이용인의 공격적 행동이나 반복행동을 오랫동안 ‘문제행동’으로 이해해 왔다. 그래서 대응 역시 통제와 제재 중심이었다. 그러나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중심으로 한 교육 이후, 변화가 시작되었다.
종사자들은 그 행동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 행동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분은 지금 무엇이 불편한가.”
문제는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자 대응도 달라졌다. 먼저 멈추고, 살피고, 기다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는 분명했다. 갈등은 줄고, 관계는 깊어졌다.
노인요양시설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업무의 효율이 중요하게 여겨지던 현장에서, 어느 순간 질문이 바뀌었다.
“우리는 왜 이분을 돌보고 있는가.”
그 질문 이후, 종사자들의 손길이 달라졌다. 식사를 도울 때 서두르기보다 기다려주기 시작했고, 이용자의 선택을 존중하려는 노력이 늘어났다. 속도는 조금 느려졌지만, 이용자의 표정은 더 편안해졌다. 돌봄의 질이 무엇인지, 현장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든 현장이 이런 변화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곳에서는 여전히 교육이 형식으로 남아 있다. 연 1회 의무적으로 이수하는 과정, 이론 중심의 전달, 그리고 교육이 끝나면 다시 원래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일상. 이런 경우 교육은 질문을 남기지 못한다.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물음이 생기지 않으면, 변화도 시작되지 않는다.
나는 이 지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남기는 일이다.
특히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쉽지 않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일이 달라진다.
질문을 품고 일하는 사람은, 이용인을 ‘관리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질문을 잊지 않는 조직은, 시설을 ‘운영하는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로 만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정체성 교육이 거창한 철학 강의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단순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이 상황에서, “우리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를 함께 묻는 것. 그리고 그 질문을 현장의 언어로, 실제 사례로, 함께 나누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