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존엄을 담아내는 호칭의 무게
회의실 문을 닫는 소리가 울리자, 김부장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박과장, 이번 프로젝트는 밑에 직원들 관리가 핵심인데 자네 생각은?" 공기 중에 맴도는 '밑'이라는 단어가 귓전을 때렸다. 문득 옆자리에서 고개를 숙인 신입직원의 표정이 스쳤다.
그는 최근 들어 사무실 내 호칭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직원', '동료', '팀원'이라는 중립적 표현 대신 '밑'이라는 수직적 은유를 사용하는 김부장의 습관은 단순한 언어 선택을 넘어 조직 문화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회의록 정리 시마다 반복되는 '부하직원'이라는 표현은 서류 속 잉크보다 더 진하게 조직 계급 의식을 각인시키고 있었다. 신입직원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요새 애들은 참 창의적이네'라며 위압적으로 무시하는 모습에서, 언어가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을 목격했다. 인사평가서에 '상급자, 하급자 평가'이라는 항목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수직적 관계를 강조하는 문화의 연장선이었다. 반면 타기관 동료들이 팀원들을 '파트너'라고 부르며 협업하는 모습에서 언어가 만들어내는 역동적 관계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박과장은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업무 지시 시 '김 선임님, 자료 검토 부탁드립니다'라고 이름과 직급을 병기하며 존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두 달째 '우리 팀원들'이라는 표현을 의식적으로 사용하자,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제는 입사 3개월 직원이 '과장님, 제안할 방안이 있습니다'라며 첫 아이디어를 내놓는 진기록을 세웠다. 박과장은 서류 더미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야경이 수평선처럼 펼쳐져 있었다.
언어는 관계의 거울이자 문화의 씨앗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성과 보고서에 '하부 조직' 대신 '함께 성장하는 팀'이라는 표현을 넣어보려 한다. 작은 단어 변경이 쌓여 언젠가 진정한 동료애의 다리를 놓을 수 있으리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