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3일 일요일 을사년 무인월 계해일 음력 1월 25일
살다 보면 외면한 채 도망치기만 하는 것들이 있다. 언젠간 해야지 하고 기약 없는 미래로 미루기만 하는 것들.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마주하기를 거부하기도 하고 떠올리지조차 않으려 하는. 그러다가도 언젠간 마주하긴 해야 하는데 하며 한숨짓는. 어제는 특별한 목적 없이 한참 동안 노트북과 마주 보고 앉아 시간을 보낼 일이 생겨, 그렇게 도망쳤던 것들 중 일부를 마주하게 되었다.
2월 초에 연락하기로 해놓고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연락을 던지기도 했다. 15만 원을 갚아야 할 일이 있었는데, 사실은 일경험 프로그램을 마치고 충분히 이체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보내주고 이어질 약간의 스몰토크를 하기에는 좀 지쳐 있어서 좀 더 괜찮은 컨디션일 때 이 채무 관계를 정산하며 말을 걸기로 했다. 원래는 1월 말 설 연휴에 단기 알바를 할 계획이었어서 2월 초에 받은 알바비에서 떼어다 갚는다는 설정이었는데, 단기 알바를 알아볼 정신적 여유가 없는 상태로 1월이 지나가 버리고 어느 순간 2월의 어느 날을 살아가고 있더라. 더 미루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 조만간 처리해야지 하고 있던 일인데, 특별히 해야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느 정도 정신적 여유가 확보되더라.
배우 활동을 그만둔 후 배우 계정이 아닌 문화예술 분야의 전반적인 흔적을 남기는 용도로 써야지 했던 인스타그램 계정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뒤로 접속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떠나온 시간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것도 언젠가 정신적 여유가 되면 조금 건드릴 거 건드린 후에 마저 이야기를 해나가자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막상 해보니 건드려야 할 부분은 많지 않았지만 한참을 미루기만 했던 것이다.
최근에는 다이어리에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다이어리 맨 앞에 비상용으로 두 가지 크기의 포스트잇을 장만해 놓고 빠르게 메모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임시로 기록하곤 했는데, 그 용도를 하나 늘렸다. 무언가 언젠가의 미래로 미루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그것을 적어 월간 기록 페이지의 적당한 위치에 붙여 놓았다. 늘 가지고 다니는 물건의 매일같이 보는 부분에 붙여 놓으면 그래도 덜 도망치지 않을까. 시야를 가리는 이 포스트잇을 떼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행동하지 않을까. 그러는 사이에 여덟 개의 포스트잇이 붙고 그중 두 개의 포스트잇이 떨어졌다. 그리고 세 단계로 이루어진 작업이 적혀 있는 포스트잇 하나는 마지막 단계만을 남겨 놓고 있어 오래가지 않아 떼어질 것이다.
살면서 도망치게 되는 많은 일들이 시작을 주저하지만 결국 마주하고 나서 돌아보면 그렇게까지 겁먹을 일은 아니라는 걸 안다. 알고 있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시킬 적당한 방법을 찾는 게 좋은 것 같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엇이 나의 포스트잇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 각자 스스로 찾아내야 하겠지.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모쪼록 잘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