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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Sep 19. 2024

#17 친구

2024년 9월 19일 목요일 갑진년 계유월 병술일 음력 8월 17일

어디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지가 상대와의 관계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달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그 영향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말이다. 래리의 지저귐 속에서 아무 말이나 내뱉던 곳에서 비롯된 인간관계와 어떤 결과물을 함께 만들어 가기 위한 동료로서 만난 인간관계, 그리고 지원사업을 통해 알게 된 인간관계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의도적으로 구분지은 건 아닌데 무의식적인 영역에서의 구분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 인간관계 특성상 나는 동료와 친구가 되지 못한다. 동료는 공적인 관계일 뿐, 사적인 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 집 방향이 비슷해 항상 답십리역 방향으로 함께 걸어가곤 하던 91년생 형씨도 그중 가장 친밀하다고 할 수 있긴 했지만 친구 비스꾸레한 것이라고도 할 수 없는 관계였다. 그마저도 그 형씨가 다른 동네로 이사 가서 귀갓길이 달라지면서 스몰토크조차 거의 줄어들었으니... 사적인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아 친구 비스꾸레한 무언가가 형성이 될 리가 없다.


지원사업에서 만난 사이는 조금 애매하다. 처음에는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며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한두 명씩 마음을 여는 상대가 생겼다. 알고 지내는 이들 중 반도 안 되는 인원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친구 비스꾸레한 무언가는 되지 않을까 싶은 사람이... 대충 세 보니까 여섯 명 정도 있는 것 같다. 그중 두 명 정도는 연락도 안 하고 지내지만 말이다. 한 명은 애초에 연락처를 공유한 적이 없고 다른 한 명은 소셜 미디어를 잘 안 하는데 서울 밖으로 이사를 가서 오프라인으로 만날 일도 거의 없게 되었다. 나머지 네 명은... 소셜 미디어로 소통하다가 지원사업에서도 만나고 때로는 프로그램 끝나고 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헤어지거나 따로 만나기도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그들 말고도 몇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안 생긴다.


그 '친구 비스꾸레한 무언가'에 도달한 이들 중 극히 일부는 '이 정도면 그래도 나름 친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의 범주에 들기도 하는데―라고 해봤자 지금까지 딱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상호작용을 거의 안 하고 지내긴 하지만, 지난번에 보니까 오랜만에 만나도 그럭저럭 편하게 잘 지내긴 하더라.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기보다는 그저 언제나처럼 잘 지낼 수 있다는 게 또 친구의 특성 중 하나인 것 같다. 몇 개월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 아랫동네 친구들처럼 말이다.


그러면서도 왠지 지원사업에서 알게 된 친구는 래리로부터 비롯된 친구와는 구분된다. 래리를 통해 알게 된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친구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듯 알게 된, 친구의 친구 집단. 정확히는 그들은 전부 이반의 인맥들이고 나 또한 one-of-them일 뿐인 것 같다. 래리를 통해 린을 알게 되고, 린을 통해 이반을 알게 된 후, 나머지는 다 이반의 인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워낙 린과 이반하고는 은혼식 개그를 주고받는다거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많이 드러낸 사이다 보니 그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들 대할 때의 태도가 나오면서 좀 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쉽게 드러난 것 같다.


반면 지원사업에서 알게 된 이들에게는 좀 더 이미지 관리가 이루어지는 느낌. 시간이 지나면 좀 더 터놓고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그냥 새삼, 내 주요 인맥은 대체로 이반의 인맥이었구나 하는 걸 인지하며, 결국 그쪽에도 내 인맥은 거의 없다는 느낌이다. 거기에서도 두어 명 정도만 친구에 가깝고 나머지는 친구의 친구 언저리인 것 같다. 친구란... 쉽지 않다.


아, 그런 거 있다. 친구의 친구로 알게 된 경우엔 '이반하고도 친구 하는 녀석인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허용 범위를 낮춰 생각하는데, 지원사업 같은 데서 완전 새롭게 만난 경우에는 상대가 어느 정도 선까지 허용하고 어디서부터 불편해할지 아무것도 판단이 안 되어 일단 조심하고 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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