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8일 수요일 갑진년 계유월 을유일 음력 8월 16일
며칠 전, 별이와 뮤지컬 《시데레우스》를 보고 온 후, 새삼 뮤지컬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게 되었다. 몇 년 전 일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말이다. 내가 이것저것 보러 다니며 즐기던 시절에는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없었는데, 더 이상 즐겨 보지 않게 된 이후에 연극과 뮤지컬에 관심을 갖는 친구가 한두 명씩 생기기 시작한다니, 미묘한 지점이다. 관심도 많고 정보도 많고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닐 때 그런 친구가 있었다면 꽤나 잘 지냈을 텐데.
좋아하던 작품들도 많이 잊혔다. 요 며칠 사이에 '그러고 보니 이 작품도 참 좋아했는데 완전히 잊고 지냈구나' 하고 떠올린 것이 몇 개 있는데, 어쩌면 기억 밖의 영역에 그보다 많은 것들이 흩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예매처 홈페이지의 기록에서도 내가 가장 많은 관극을 하던 시기의 기록은 너무 오래되어 찾아볼 수 없더라.
몇 가지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던 몇 가지 관계성이 눈에 띈다. 《시데레우스》의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요하네스 케플러, 《프랑켄슈타인》의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앙리 뒤프레,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토마스 위버와 앨빈 켈비,... 앞에 오는 이름들끼리 비슷한 느낌으로 캐스팅되고 뒤에 오는 이름들끼리 비슷한 느낌으로 캐스팅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이 작품들을 본 사람들은 대체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후자의 입장에서 전자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베어 더 뮤지컬》의 제이슨 멕코넬과 피터 시몬드, 《스모크》의 초와 해 같은 경우에도 캐스팅은 그런 느낌인데, 이 관계성과는 뭔가 다르다. 뭔가... "너의 책 기본 이론부터 마지막 장까지 빈틈 하나 없이 부숴 줄 테니"에서 "네가 어둠 속을 헤매도 걱정하지 말아 내 눈에 담긴 모든 걸 전해줄게"가 되기까지, "질문입니까, 명령입니까?"에서 "네가 살아야 우리 연구, 계속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나 대신 살라고."가 되기까지, 그 어떤 관계성의 변화가 좋았던 것 같다. 엘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송덕문을 써 내려가는 토마스의 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건 대사나 가사로 언급하기가 애매한 것 같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유다 이스카리옷도 참 좋아했는데, 학생 때 누가 어디 가서 유다 좋아한다고 잘못 말하면 교인들에게 좋지 못한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세인트 영멘》이라는 만화에서도 유다를 좋아했다(...). 오리지널은 내가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2차 창작에서는 꽤나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 걸 어쩌겠나.
잊힌 기억 너머에 존재하던 작품 속의 관계성에서 내가 갈망하던 무언가를 떠올려 본다. 그런 관계성. 부정하거나 경계하다가 상대를 긍정하고 둘도 없는 가까운 사이가 된다거나, 처음부터 소중한 사이였으나 그것을 잊고 지내다가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 속에서, 난 그렇게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를 원했던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