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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Sep 17. 2024

#15 상처

2024년 9월 17일 화요일 갑진년 계유월 갑신일 음력 8월 15일

상처 안 받으려고 해도 때로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다가도, 역시 감정을 부정하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장난은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가야 할 텐데 그게 잘 안 된다. 저 사람은 무슨 의도로 저런 소리를 했을까 싶다가도, 역시 그냥 장난삼아 한 말 같은데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나에게 상처 주는 언행을 하면 그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쌓이는 것도 있지만, 나에게 우호적으로 대해주는 이에게 매몰되는 경향도 있다. 그 사람이 불편해하거나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으니 너무 과도하게 매몰되지는 않으려고 애쓰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지나치게 매몰된다. 이게 과해지면 집착에 가까운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9년 전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 또다시 스스로를 통제하려 든다. 아주 오래전 최소한의 통제가 되지 않던 나에게 시달리던 이진에게는 미안할 따름이다.


우호적으로 지내던 사람조차 한 순간의 상처로 평가절하를 하기도 한다. 지나친 이상화와 평가절하. 늘 경계하려고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곤 하는 것들. 한 사람에 대한 감정이 수십 수백 번씩 오락가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최대한 모두를 중립적으로 대하려고 해 왔다. 평가절하의 상태일 때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대했다가는 그 일시적인 상태를 벗어났을 때 관계 회복에 어려울 수 있다. 이상화의 상태일 때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대했다가는 그 일시적인 상태를 벗어났을 때 사람이 변했다며 실망할 수도 있다. 타인에 대한 내 행동 변화에 대한 그의 반응이 나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강한 척하며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넘기기 시작한 건 아마 고등학생 때부터였을까. 학교에서 단체로 한 심리 검사에서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간이 검사에서도, 무언가에 대해 정밀 검사를 받아보거나 전문가 상담을 받아보라는 말을 마주치곤 했다. 검사 결과 때문에 상담실에 불려 간 적도 있다. 전혀 도움은 안 되었으며 오히려 상담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커졌지만. 당시 난 주장했다. 이런 상담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 해낼 수 없는 것이라면 상담 또한 시간 낭비일 뿐이다. 물론 지금은 그 당시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여전히 혼자 버티려는 습성이 남아있는 건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게 된다면 좀 나아질까.


내 감정을 어디까지 드러내는 게 좋을지, 타인에게 어느 정도까지 의지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나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결국엔, 타인을, 그리고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이 난제다. 누군가와 상호작용하고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대해 새롭게 배워가기 시작한 지 이제 1년쯤 지났나. 여전히 답을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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