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6일 월요일 갑진년 계유월 계미일 음력 8월 14일
사실은 언제라도 서울을 떠날 요량이었지만, 지원사업으로 또 일경험 프로그램으로 날 다시 한 동안 이곳에 붙잡아 두었다. 왜? 글쎄. 막연하게 떠나고 싶다가도 그 막연함이 두려운 거겠지. 남동쪽 어딘가. 가깝게는 대구부터 멀게는 부산까지. 아니면 산청도 괜찮지 않을까. 혹은 아예 방향을 틀어 나의 어린 날을 보낸 홍성이라던가.
요즘은 경기권도 나름 괜찮아 보인다. 익숙한 분리수거의 도시 성남이라거나, 헌혈 불가의 도시...가 아니라 출판의 도시 파주라던가, 옛 랜선친구가 살던 고양이라거나. 당시 중학생이던 나에겐 나의 랜선친구가 엄청 어른처럼 느껴졌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래봤자 92년생이구나. 80년대 중후반생과도 심심찮게 상호작용하게 되다 보니 이제는 그냥저냥의 나이로 느껴진다. 역시 상대적인 건 미묘한 지점이다. 92년생이면 그렇게 나이차가 큰 건 아니잖아? 몇 개월 전에 나에게 우쿨렐레를 빌려줬던 형씨만 해도 88년생이고 말이지.
하여간 최근에 성남시 거리를 거닐며 저 멀리 어딘가가 아니라 경기권만 나가도 정신적으로 훨씬 여유롭다는 걸 느낀 나는 어찌 되었건 역시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은 외면할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복잡함, 기술과 문화에서 조금 벗어난 삶에 대한 고질적인 갈망. 수도권보다는 그렇지 않은 쪽이 더 좋은데. 적당히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 광역시 정도면 좋지 않을까. 웨이브락의 도시 부산이라거나, 따끈따끈 대구, 아니면 그 어디라도. (물론 다들 '따끈따끈'에 동의해주지 않고 그건 '후덥지근'이라고 하긴 하더라. 아무렴 어때.)
가자, 떠나자, 그 어디론가. 어쩌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등질지라도. 애초에 잃을 것도 없지 않았나 싶다가도, 그래, 그렇네. 그렇구나. 지난 1년 사이에 지원사업 참여하면서 잃을 것이 많이 생기긴 했구나. 어느새 나에게 그 정도의 무언가가 되어 있었구나. 아무래도 이제는 이곳을 떠날 때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그렇게 되어 버린 것 같다. 어느 순간 나에게 훅 들어온 존재들이라...
몇 주 전에 수행한 드라이버 탐색 유형 검사에 의하면 '강해져야 해' 드라이버가 순수하게 스트레스 요인으로만 높게 나왔는데, 요즘은 그러한 강박 속에서 부정하고 외면하던 감정들을 조금 더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다가도, '왜? 안 될 것까지 있나?' 하기도 하고. 다른 건 몰라도 내 감정에 만큼은 솔직하고자 했던 녀석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싶기도 하고. 뭐... 내 감정만 쫒다가 크게 데인 적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그 처음이 아마 딱 10년 전일 거고, 가뜩이나 사회성 없고 현실보다 소셜 미디어를 살아가던 꼬마는 좀 더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 MBTI 검사를 했을 때 전체적으로 오락가락하던 거에서 T만 고정되기 시작한 것도 그 나이대 언저리부터인 것 같기도 하고. I보다 E가 더 자주 나오던 것도 그 언저리에 역전된 것 같다. 나머지 두 개의 값은 언제나처럼 애매하게 나오지만.
하여간 이제는 내 삶에 유의미한 존재가 되어 버린 이들을 떠올리며, 모든 걸 등진 채 어디론가 훅 떠나버리긴 쉽지 않겠구나. 사실 지난여름에 짧게나마 저질러버릴 생각이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해두지 않은 채, 소셜 미디어 업로드도 없이, 딱 한 달 동안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까. 산청 한 달 살기 같은 시간 속에서 내 마음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연락을 시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했을, 남겨질 이들을 고려하지 않고 말이다. 이제는 날 걱정할 사람이 몇 명 정도는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그런 짓은 저지르지 않겠지만, 시간을 들여 이것저것 정리하고 떠나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려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