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5일 일요일 갑진년 계유월 임오일 음력 8월 13일
글이란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뜻 보기에는 말에 비해 감정과 뉘앙스가 잘 드러나지 않아, 많은 게 배제되어 있는 것 같다. 똑같이 사용한 어휘와 표현이 얼마든지 다르게 읽힐 여지가 있다. 그런데 때로는 글에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두서없이 맴돌던 이야기를 구체적인 어휘로 정리하여 작성한다. 말에서는 어물쩍 넘어갈 수 있던 부분에 대해서도 글을 쓸 때는 명확한 표현을 찾는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 글은 난잡한 무언가가 되어 버린다. 개인 소셜 미디어 계정에 올리는 일상적인 게시물에서는 그러한 난잡함도 하나의 개성으로 읽히지만, 보다 본격적인 글일 경우 그렇지 않다. 내가 어떤 의도로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적절한 문장을 구사하지 않는다면 상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읽기를 포기해 버릴지도 모른다.
꾸준히 써내려 가는 글이 좋다. 그 글 속에서 전해지는 무언가가 좋다. 누군가의 취향과 가치관이 묻어나는 글을 읽다 보면 내적 친밀감이 쌓이고 그 사람에 대해 좀 더 가까이 알아가는 느낌이 든다. 사적인 이야기가 배제된 글에서조차 그 누군가의 소식을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느 곳에 있어도, 만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서로에게 연락을 하지 않아도, 소셜 미디어든 독립출판물이든 뭐든, 어떠한 경로로든 그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그 마음 곁에 있는 것이다.
독립출판물의 경우 원고가 쌓이고 출간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고 또 그것이 나에게 도달하는 데까지도 시간이 걸려 글을 쓴 자와 읽는 자의 시간차가 큰 편이지만, 그건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어서 좋아한다. 답장이 올지 알 수 없는 편지를 보내는 느낌일까. 난 시간차를 가지고 소통하는 편지도 좋아한다.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문자 메시지나 채팅 서비스보다도, 적당한 길이의 글을 한 번에 보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도착하여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편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도 있으니까.
누군가가 쓴 글을 읽다 보면 쌓이는 내적 친밀감에, 내가 그 작가의 친구는 아니지만 그가 쓴 글, 그가 쓴 책의 친구 정도는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형 출판사에서 나온 책보다도 독립출판물을 읽을 때 그런 느낌을 받곤 한다. 그리고 그런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독립출판물을 소개받을 수 있는, 독립출판 행사를 좋아한다. 매년 구경 가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건 책마을 - 독립출판 부스다.
항상 책과 글의 곁에 살던 녀석을 떠올려 본다. 사실 그는 아직도 책의 곁에 살고 있긴 하다. 출판사 마케터로서 일에 치여 사느라 본인의 글로부터 멀어졌을 뿐. 생각해 보면 이반이 본인의 글을 책으로 만들고 이야기를 써내려 가던 때에는 여러 가지로 좋은 영향도 많이 받고 꽤나 즐거웠는데. 이제는 이도 저도 아닌 관계로 흩어져 가는 시간 속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던 건 독립출판물에 진심이었던, 작은 1인 출판사의 대표로서의 이반이었을 뿐인가,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