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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연락

2025년 3월 8일 토요일 을사년 기묘월 병자일 음력 2월 9일

by 단휘

보통 사람들에게는 '연락하기 힘든 상태'라는 게 없는 걸까. 난 계획에 없던 공적인 연락을 해야 할 경우에 대체로 그럴 여력이 없다. 연락이 가능해지기까지 몇 시간에서 하루 정도는 걸린다. 몇 날 며칠을 미루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게까지는 아닌 것 같다. 사적인 연락이야 적당히 늘어진 채 아무 말이나 내뱉어도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공적인 연락에는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때로는 어느 정도 편한 상대가 아니라면 사적인 대화에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때도 있다.


연락을 어려워할 때 누군가는 "전화가 힘들면 문자로 하면 되지" 같은 소리를 하는데, 이건 전화가 힘든 게 아니다. 물론 준비되지 않은 무언가에 대한 실시간 소통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화가 더 부담되는 건 사실이지만, 생각이 정리가 안 되어 언어의 형태로 끄집어내기 어려운 건 문자도 마찬가지다. 왜 전화만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생각이 언어의 형태로 정리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난 유독 오래 걸리는 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그래서 상대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거나 한참 뒤에 뜬금없이 오래 전의 질문에 대한 응답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 정도로 이해받기 어려운 영역인 줄은 몰랐다.


편할 때 전화 달라는 말에 두어 시간만에 전화하는 건 나로서는 꽤나 빠른 응답이지만 아마 사회생활을 하면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클라이언트와 즉각적인 소통이 필요할 수도 있고, 연락을 지체하면 신뢰도가 떨어지는 영역도 있다.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가기 전에는 그 시간 지연을 줄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게 참 쉽지 않다. 특히 집에 있을 때는 그런 연락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커지니 어디로든 출근을 하는 삶이 필요할 것 같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더라도 집에서 작업하기보다는 적당한 작업 공간을 찾아야지. 아니면 어떻게든 집에서도 바깥에서만큼 거부감을 줄일 방법을 찾던가 말이다.


정신력이 많이 떨어져 있을 땐 핸드폰에 알림이 떠 있는 걸 알면서도 확인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좀 이따 답장해야지 하고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카카오톡의 경우 기기 이슈로(나의 노트9에서 유일하게 버벅거리는 앱이 카카오톡이었다. 채팅방을 눌러도 빈 화면이 뜨기도 하고, 그 상태에서 일이 분 정도 기다리다 포기하고 뒤로 가기를 누르면 읽지 않음 숫자가 사라지지도 않고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것으로 취급한다거나.) 모바일 버전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가끔 필요한 일이 있어서 확인하다가 나중에 연락해야지 하고 미룬 채팅방은 몇 날 며칠 잊히기도 한다. 한참 뒤에 다시 접속했을 때에야 인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은 그냥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어차피 그곳으로 연락하면 제대로 답장받을 확률이 낮으니 거기서 나를 찾지 말라는 것이다.


밀린 연락에 응답하는 것도 많이 쌓여 있으면 쉽지 않다. 새벽에 GitLab에서 웬웨이 님한테서 받은 댓글에 대해서도 응답을 미루고 있다. 영어로 소통한다는 점에서 정신력 진입장벽이 조금 더 높아진다. 내일쯤 응답해야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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