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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퍼스널 스페이스

2025년 3월 21일 금요일 을사년 기묘월 기축일 음력 2월 22일

by 단휘

친구 중에 상당히 흥미로운 녀석이 있다. 행동 원리가 잘 파악된다고 해야 하나, 그 친구의 비언어적인 표현을 내가 잘 이해하는 편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나와 많이 닮아서, 내 논리로 추측한 사실이 대체로 맞는 경우가 많다. 장난 코드도 잘 맞는 편이고 관심 분야도 묘하게 겹쳐 가장 연락을 많이 하고 지내는 TOP3 안에 드는 녀석이기도 하다. 최근에 다른 청년 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 있었는데, 처음에는 좀 더 객관적으로 본답시고 상황만 듣고 판단했지만 '내 경우에는 이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오히려 답이 나오더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나 그 녀석이나 퍼스널 스페이스가 참 없는 녀석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아무렇지 않게 선을 넘어버리는 녀석들인 거다. 그 적절한 선을 모르겠어서 어느 정도 가까워진 지인들에게도 거리감을 두게 되는 것 같다. 있는 그대로 대했다가 상대가 불편해하는 것보다는 조금 어색해도 거리를 두는 편이 서로에게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만. 내 친구와 친구가 아닌 자의 경계가 이것인 것 같다. 친구가 아닌 자에게는 임의의 지점을 넘지 않도록 무의식적으로 통제한다. 그 무의식적인 통제를 살짝 벗어나는 순간이 있지만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은 경우에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 혹은 친구 언저리로 취급하는 것 같고. 그리고 상대를 친구로 인식하는 순간 퍼스널 스페이스 같은 건 모른다는 태도가 확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친구를 대하는 날 것 그대로의 상태"가 내 친구랑 많이 닮아 있다. 그 녀석도 어느 정도 친해진 상대에게만 그렇게 대하는 것 같고 말이다. 그런 그에 대해서 그 친구와 친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지인은 "왜 이런 걸 묻는 거지?" 하고 당황한다거나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는 모양이다. 내 친구가 그 지인에게 물어봤다는 것은 나도 처음에 들었을 때 되게 뜬금없으면서도 사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알겠더라. 그건 단지 현재 대화 주제와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의 교차점을 순간적으로 내뱉어 버린 것에 불과했으리라. 나도 가끔 미정이한테 그런 교차점을 내뱉어 버리고는 아차 하는데, 나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나래라면 분명 그랬겠지.


한 발 물러나서 남의 입장에서 보면 갑자기 훅 들어온다는 느낌을 받는 말들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솔직히 나랑 나래야 서로 퍼스널 스페이스가 없는 녀석들이라 웬만한 건 불편해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다지만 다른 친구들의 경우 어땠을까. 생각해 보면 친구가 아닌 자들에 대해서도 출력값만 조심할 뿐 입력값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안 쓰는 편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친밀도보다 상대가 느끼는 친밀도가 더 높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걸까. 상대 입장에서는 나에게 친한 사람 대하는 거리감으로 대해도 내가 불편한 기색 없이 행동하는 것일 거고, 내가 상대에게 그렇게 대하지 않는 건 그냥 성향적으로 원래 그런 녀석이라고 생각한다면, 서로에 대한 거리감을 꽤나 다르게 느낄 수도 있긴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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