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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자격증

2025년 3월 27일 목요일 을사년 기묘월 을미일 음력 2월 28일

by 단휘

세상을 등지고 살아갈 적엔 취업 준비고 뭐고 아무것도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저 관성적으로 하던 것만 이어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마저도 열심히 하지 않았고 정말 최소한의 노력만 들여가며 흘러가는 대로 살아갔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관성적으로 존재하던 것들을 끊어내고 무에서부터 시작해 나아갈 길을 찾고 있다. 아직 뚜렷한 방향성을 잡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사전 지식이 있는 분야가 IT와 출판 업계인데, IT 분야의 너무 빠른 기술 트렌드 변화를 따라가기 지쳐 후자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있다. 기술교육원 디지털미디어디자인과에 지원한 것도 Adobe 제품군에 익숙한 편이 출판 업계에 발을 들이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사실 출판 업계는 내가 기존에 가진 것들의 조합에서의 최선이지 반드시 도달해야겠다는 목표는 아니기에 교육을 받으며 만나는 다른 기회가 있으면 얼마든지 고려해 보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그렇게 살아오면서 남들 취업 준비하면서 딴다는 자격증 하나 따지 않고 지냈다. 뭘 하면 좋을지도 모르겠고 뚜렷한 관심 분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 한다고 다 따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격증이라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관심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겠다. 주변에 자격증 공부를 하는 녀석들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남들이 한다고 할 땐 흥미가 생기지 않았지만 바로 옆에서 하고 있으니 힐끗 구경하게 되더라. 컴퓨터활용능력 1급이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보니 컴퓨터 일반 과목의 내용은 내가 알고 있는 게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시험 준비를 하는 당사자는 전혀 재미가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알짱거리고 있으니 컴활 공부를 하던 친구가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추천해 주었다. 필기시험 온라인 모의 평가를 풀어보았는데, 졸업한 지 한참 지난 나의 사전 지식만으로 따로 공부하지 않고 합격점이 나오더라.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느니 이참에 자격증이나 하나 따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정보처리기사 필기시험을 신청한 게 올 초의 일이다. 정기 기사 1회 필기시험 접수 기간은 이미 끝나 있었는데, 빈자리 접수가 남아 있어 그것으로 접수했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기술교육원에 다니며 몇 가지 디자인 분야 자격증을 알게 되었고, 정보처리기사보다는 그쪽에 더 관심이 간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저 그거 할 줄 알아요. 시켜주세요." 하는 것보다는 "비전공자지만 이런 자격증도 있고 포트폴리오도 만들었어요." 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하니 말이다. 듣자 하니 전공자에게는 자격증이 별 의미 없고 포트폴리오만 있으면 충분한데, 비전공자라면 "이만큼 공부했어요" 하는 지표로 삼을 수 있어 유의미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하더라. 그런 의미에서 기술교육원 다니며 이왕 공부하는 거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자격증까지 노려 보라나. 뭐, 그것들은 6월 말에야 필기시험이 있으니 적당히 4월 말에 공부를 시작하면 될 것 같다. 그전 한 달 동안은? 그래도 이왕이면 건드리고 있던 정보처리기사는 되든 안되든 한 번 해보자고. 사실 접수 기간 첫날에 기술교육원 수업 듣는 사이에 수도권 시험이 전부 마감되어서 살짝 의욕을 잃었다가 어제 자리가 좀 생겨서 접수해 버렸다. 시험 날짜가 기술교육원에서 GTQ 단체 접수로 시험 보기 6일 전이라 한 달도 안 남은 와중에 공부할 여유가 될까 싶기도 했지만, 친구 녀석과 이야기하다 보면 평소에는 관성적으로 안 해버릴 것들도 저질러 버리게 되는 경향이 있더라. 사람 자체도 좋지만 날 어떻게든 도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꽤나 괜찮은 녀석이다.


자격증 하나 없던 녀석이 2025년을 보내고 나니 N개의 자격증을 가진 녀석이 되어 있는 것에 관하여. 뭐, 나쁘지 않잖아? 그러고 나서 적당한 일자리까지 만난다면 완벽할 텐데 말이다. 배운 적 없던 녀석치고는 GTQ 1급 기출문제도 그럭저럭 푸는 편이고 path도 어느 정도 잘 다루는 편인 것 같은데 이 잠재력을 믿고 날 데려갈 회사 없나, 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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