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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선크림

2025년 4월 23일 수요일 을사년 경진월 임술일 음력 3월 26일

by 단휘

11살 때 가족이 어떤 이벤트에 당첨되어 괌으로 관광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타의적이었지만 그것은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뻔했지만 성인이 되기 직전 즈음이었던가 또 가족에 의해 어딘가에 다녀왔다. 별다른 감흥도 없고 기억도 잘 나지 않아 굳이 해외까지 가서 시간을 보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 돈이면 국내에서 더 잘 즐길 수 있을 텐데. 하여간 나의 첫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출국 심사에서 걸렸다. 여권과 동일인물인지 확인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괌에 있던 며칠 사이에 여권과 동일인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외형 변화를 야기한 건 가족이 챙겨준 선크림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변수가 너무 많아 무엇을 잘못 먹은 건지, 가족을 따라 한 번 해 본 마사지팩이 잘 안 맞았던 건지 무엇이 원인인지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알레르기라고 하니까 미심쩍어하다가 가족여행 왔다가 돌아가는 것이라는 정황이 보이니까 통과시켜 주셨다. 원인이 선크림이었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며칠 시간이 걸렸던 것 같은데 어떻게 원인을 특정하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식중독이 의심된다고 혹시 모르니 이러이러한 것을 먹지 말라는 의사 소견을 받아와서 급식 메뉴를 일부 먹지 못했던 게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한국에 있을 땐 괜찮다가 괌에서만 선크림 알레르기가 반응을 했냐, 라고 한다면 한국에서는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다고 해두겠다.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그런 걸 귀찮고 번거롭다고 느껴 안 바르고 다녔을 것이다. 그러다가 여긴 햇빛이 많이 세니까 발라라 했던 게 그렇게 반응한 거겠지. 그 이후로도 한 번 완전히 잊고 있다가 선크림을 바르고 나서 피부가 붉어지고 두드러기가 났던 적이 있었는데 그건 또 어쩌다가 바르게 되었더라.


이러한 이유로 선크림을 바르지 않는다고 하니 몇 해 전인가 누군가 아이들도 쓸 수 있는 순한 제품을 추천해 주었다. 그것을 바르니 시각적인 이상은 없는데 피부에 몇 분 정도 후끈거리는 감각이 느껴지다 사그라든다. 이게... 순한 제품? 미리 조금 테스트해 보고 사용하기도 어려운 게, 이 제품은 팔에는 반응이 없는데 얼굴에만 후끈거리는 감각이 느껴지더라. 어릴 때 그 선크림처럼 어느 부위에든 반응하면 팔에 테스트해 볼 수 있겠지만 이런 녀석은 테스트는 통과했지만 실전에서는 문제가 발생하는 녀석이다.


결국 선크림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자외선이 어쩌고 하며 귀찮거나 느낌이 이상해도 바르라고들 하지만, 알레르기까지 견뎌 가며 발라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가방에 작은 우양산 하나를 챙겨 다닐 뿐이다. 최근에는 장우산 하나를 얻었는데 주요 기능은 양산이고 우산으로도 사용 가능한 제품이라는 태그가 붙어 있더라. 커다란 양산을 쓰고 다니면 너무 유난스러워 보일까 싶다가도, 아무렴 어때. UV 89% 차단이면 안 쓰는 것보다 훨씬 나을 테니 어때 보이는지는 부차적인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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