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관계

2025년 4월 28일 월요일 을사년 경진월 정묘일 음력 4월 1일

by 단휘

서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관계가 좋다. 서로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언제부턴가 느끼고 있다. 어떤 배경을 갖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지 못해도 있는 그대로의 현재 모습을 받아들이고 존중해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서로에 대한 배경 지식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배경 지식이 있으면 현재의 상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이해를 해야 할까? 자고로 이해했다고 믿는 대부분의 것들은 오해에 불과하다. 대략 비슷하게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해는 하면 좋지만 안 해도 무방한 것 아닐까.


어제는 3년 동안 알고 지낸 지인의 나이를 처음 알게 되었지만 그것을 알기 전후로 그다지 달라진 점은 없다. 그 사람이 나보다 7살 많다는 사실은 우리의 관계에 그 어떤 영향도 주지 않을 테니 말이다. 실명제로 활동하지 않는 집단의 경우 서로의 이름조차 모른 채 상호작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아무것도 문제 되지 않는다. 어제는 몇 개월 동안 알고 지낸 이들에게 이름을 밝혔지만 이 또한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실명제로 운영되는 곳에서조차 상대의 이름과 나이를 알려고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기술교육원에는 이름도 뭣도 아무것도 모른 채 얼굴만 아는 상태로 가끔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 몇몇 있다. 이제는 상대의 이름을 애써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저 비언어적으로 내 인지 영역으로 식별 가능한 상태로 둔다. 그러다가 언젠가 이름을 알게 되면 그 식별 가능한 개체에 라벨링을 할 뿐이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아도 대화하기 편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나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한테보다도 괜히 더 진솔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잘 알진 못해도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그저 그렇게 받아들인 채 과거도 미래도 없이 현재의 우리만 있는 그 관계가 난 좋다. 수많은 현재가 쌓여가는 것. 서로가 서로의 삶에 존재하지 않던 과거는 중요하지 않고 함께 했던 순간들만을 우리의 과거로 삼는 것. 그리고 언젠가의 미래를 떠올리기보다는 당장 눈앞의 것들에 집중하는 것.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우리가 '우리'로 존재하는 건, 그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유의미한 존재가 되어가는 거겠지. 그런 지인들이 어느 순간 친구가 되고, 내 삶의 일부가 되어 가는 걸 느낄 때 난 그게 참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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