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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미적거리다

2025년 4월 27일 일요일 을사년 경진월 병인일 음력 3월 30일

by 단휘

미적거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거슬리는 감각이 느껴지는 걸 보니 소염진통제를 먹을 시간이 지난 것 같다. 평소라면 진작에 아침 식사랍시고 프로틴 쉐이크나 견과류 한 봉지를 섭취하고 약을 먹은 지 오래였을 시간이니 그럴 만하다. 한편으로는 이 정도 거슬리는 감각이면 굳이 진통제까지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뭐 먹긴 해야지. 이건 누구처럼 "의사 처방대로 약을 복용했는데 약물 과다복용으로 전신 마비가 오는" 류의 약은 아닐 테니 말이다. 이제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렴풋한 기억 저편의 존재... 하여간 약이 남을 경우 그걸 처리하러 가는 것도 번거로우니 먹긴 해야겠다. 찾아보니 구청 홈페이지에 폐의약품 수거함 위치가 어느 건물 어디에 있는지까지 상세하게 나와있긴 하더라.


아침 식사는 늘 번거로운 일이다. 잠에서 깬 뒤 아직 활동 에너지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정적인 활동을 하며 에너지를 채워 가는 게 좋은데 식사를 준비하는 건 그에 비해 좀 더 활동성을 요한다.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번거롭긴 하지만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게 유독 더 번거롭게 느껴진다. 배가 고프지 않아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경우보다 배는 고픈데 마땅히 먹을 만한 게 없어서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역시 대학생 때 천원조식 먹을 때가 좋았다. 메뉴는 썩 내가 즐겨 먹는 류의 식사가 아니긴 했지만 그런 거로라도 배를 채우는 게 낫다. 요즘은 그냥 견과류나 프로틴으로 최소한의 에너지만 채우고 있다. 어제저녁 식사로 섭취한 에너지가 다 소진되지 않고 충분히 남아있기를 바라며.


역시 느지막이 일어나서 방에서 미적거리고 있는 건 썩 유쾌한 감각은 아니다. 그게 너무 싫어서 도피성 수면을 취하고 마는 경우도 있다. 그게 청년이음센터 초중반까지 이어지던 과수면의 정체이기도 하고. 평일이든 주말이든 오전에 어디론가 나가버리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로운 것 같다. 집에서 무언가를 하는 건, 글쎄. 환기를 할 만한 창문이 없는 방에서 탁해진 공기 때문인지 여기선 뭐가 잘 되지 않는다. 뭔가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있었던 것 같은데 떠오르지 않는다. 다이어리를 펼쳐 보니 몇 가지 적혀 있는 게 있지만 도저히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역시 어디론가 떠나야겠다.


사실 오전에는 오랜만에 클라이밍을 하러 가고 싶었는데 사랑니 발치 3일 차에 클라이밍을 하러 가는 건 정신 나간 짓인 것 같아 결국 패스했다. 그 사이에 의욕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다음 주나 뭐 적당한 때 가봐야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클라이밍장이 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는데, 내가 클라이밍을 처음 접하기 전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모양이다. 고등학생 때는 등하교 시에 종종 지나던 길이었는데 성인이 된 이래로 그쪽으로 잘 안 가다 보니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사이에 지나갔어도 아마 관심이 없어서 몰랐겠지.


그래도 오늘은 오후에 카페 모임이 있으니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평소보다 서너 시간 늦게라도 오전 중에 적당히 일어나기도 했고. 오늘 만나는 청년들은 꽤나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다. 한 명은 성동오랑에서 나랑 같은 요일 다른 시간대에 프로그램을 참여하는 모양이던데, 두 시간 차이로 엇갈려 지나가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올초까지 운영되던 커뮤니티에서 모임장을 맡았던 사람인데 그 커뮤니티가 터지면서 정기모임은 갖지 않고 가끔 비정기적으로 시간 나는 사람들이랑 모이는 모양이다. 이번에 못 보는 사람 중에는 내가 기술교육원에 다니지 않았으면 나랑 센터 방문 요일이 정확히 겹쳐 자주 만났을 사람이 있는데 다음 주부터는 금요일마다 방문해서 소통을 해볼까 싶다. 역시 난 사교성이 좀 떨어져서 그렇지 사람 만나는 것 자체는 좋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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