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9일 금요일 을사년 신사월 무인일 음력 4월 12일
내가 적당히 아무거나 주워 입고 다니는 건 기본적으로 패션에 대한 욕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옷 조금 잘 입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 거 신경쓸 여력이 있다면 곱슬머리의 잔머리나 어떻게 처리해야지. 고데기도 했다 안 했다 할 판에 무엇을 입는지가 나에게 얼마나 유의미한 영역일까. 기분 내킬 때는 좀 더 신경써서 입고 나가기도 하지만 자주 그러진 않는 것 같다. 정말 적당히 나갈 땐 소위 '개발자 룩'으로 나가기도 한다. IT 행사 티셔츠에 체크 남방을 걸치면 얼마나 완벽한가.
빠르게 준비하고 나가야 해서 평소보다 유독 패션에 할애할 여유가 없거나 신경써서 입어봐야 뭐 하겠나 싶은 상황에는 정말 아무거나 입는다. 이 때, 여러 가지 색을 섞어 입다 잘못 조합하면 엄청난 패션 테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엔 주로 무채색으로만 이루어진 옷을 입는다. 웬만하면 하나 정도 포인트 주는 색을 넣는 편이지만 그런 거 없이 완전 올블랙으로 나갔다면... 그거다. 배색 신경 안 써도 되는 걸로 아무거나 대충 입었을 뿐인 무언가. 얼마 전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청구역까지 빠르게 이동하느라 그러고 나갔더니 코스프레 의상 같은 결과물이 나와 버렸는데, 배색 이슈로 눈에 띄게 이상해지는 것만을 피했을 뿐이지 그 안에서의 편차는 꽤 큰 것 같다.
괜히 좀 더 신경 써서 입고 싶어지는 날에는 두어 가지 색이 섞인 옷으로 배색을 신경써 본다. 구성요소간 색감도 맞아야 하고 스타일도 맞아야 하고, 뭔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깊게 파려면 얼마든지 깊어질 수 있는 영역이다. 좋아하는 옷이지만 다른 옷과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잘 못 입고 다니는 것도 있고. 봄이나 가을에 입을 만한 옷은 조금만 방심하고 있으면 입을 계절을 놓쳐 버리기 십상이다. 난 선크림도 못 바르고 에어컨도 힘들어해서 여름에 짧은 옷을 못 입고 다니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면서 옷이 짧아졌다가 여름에 다시 길어지곤 한다. 대학생 때 텀블벅에서 펀딩했던 좋아하는 반바지가 있는데 작년에는 결국 거의 못 입고 다녀서 올해는 일찌감치 꺼내 들었다. 5부 바지 정도는 여름에도 입을 만하지만 그것보다 짧아지면 못 입는 경우가 많으니 봄에 입을 수 있을 때 입어 둬야지. 자연의 바람은 시원한 느낌인데 에어컨 바람은 몸이 시린 느낌인 건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 건조함과 같이 와서 그런가.
옷을 잘 안 사 입다 보니 새로운 조합은 잘 생기지 않는다. 새 옷을 사고 싶다는 욕심도 잘 안 생기고, 좋아하는 캐릭터 콜라보조차 그냥 구경만 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눈에 띄게 낡지 않은 이상 그냥 입던 걸 돌려 입게 된다. 때로는 나의 형제가 상태는 괜찮은데 안 입는 옷을 주기도 하고. 보통 핏이 안 맞거나 잘 안 입게 되거나 비슷한 게 너무 많아서 처리하고자 할 때 나에게 넘기곤 하더라. 그 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것만 몇 개 주워온다. 나머지는 뭐 버려지거나 팔려 나가거나 하겠지. 새 옷을 장만하지 않고 그래 살면서도 옷장에 옷은 많은 편이다. 분명 존재만 하고 안 입는 녀석들이 꽤나 있는 것 같은데... 정리를 해 보아도 잘 걸러지지는 않더라. 입은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괜히 남겨두게 되는 녀석들도 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