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요즘 드는 생각

2025년 7월 12일 토요일 계묘년 을사월 임오일 음력 6월 18일

by 단휘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농짓거리를 할 때 복잡미묘한 생각이 든다. 인문학도들 사이에서 개발자 드립을 치고 싶다거나. 몇 개월 전에는 개발자 드립을 공유하며 웃고 있었더니 한 청년이 나에게 자기는 정보보안 전공이라 이해한다지만 이런 농담을 어떻게 이해하는 거냐고 물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 또한 전공자라고 하니 상당히 놀라더라. 생각해 보면 그래, 취미로 Rust를 건드리던 것도 Flutter를 독학하는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 하나씩 사용하는 투폰 유저였던 것도, HTML+CSS+JS도 모른 채 웹 프런트엔드 프레임워크에 관심 갖고 공부해 본 것도, Flask나 Django에 비해 어떤지 비교해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FastAPI를 건드려 본 것도(아니 근데 이 녀석은 무슨 아직까지 버전이 1.0이 안 된 채 0.161 막 이러고 있냐?) C언어로 RPI의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구현하며 재미를 느끼던 것도 다 오래전 일이다. 그리고 이걸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게 다 뭔 소린가 하겠지.


사실 이제 와서는 나도 내 분야가 뭔지 모르겠다. 나름 내 분야에 가깝다고 생각한 무언가에 대해 누군가 뻘소리를 하면 오지랖을 부리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짓도 하지 않으련다. 적당히 모른 척, 잘 모르는 분야인 척해야지. 우매함의 봉우리에 있는 자와 갈등을 일으켜 뭐 하겠나. 난 내가 건드려 본 모든 분야에서 절망의 계곡에 있는 것만 같다. 깨달음의 오르막을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 정도의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 것 같다. 깨달음의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할 정도로 무언가를 깊게 오래 팠다면 좀 달랐을까. 하여간 우매함의 봉우리에 서서 뻘소리를 하는 사람에 대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나에게 득이 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도움을 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오만이었다. 앞으로는 적당히 무시하고 넘겨야지. 그게 서로에게 최선인 것 같다.


요즘은 할 건 많은데 정신적 여유가 모자란 느낌이다. 시간적 여유보다는 정신적 여유가 모자란 게 맞다. 시간은... 시간 자체는 충분하다. 다만 정신적 여유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그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뿐이다. 최근에는 명확한 질문을 가진 자만 도와주기로 했다. 그냥 막연하게 "뭔가 개선할 게 있으면 알려줘요"보다는, "이게 제가 만든 건데 글꼴이 너무 다양해서 문제인 걸까요?" 하고 물어보면 "글꼴이 여러 개 쓰이긴 했지만 과하다는 느낌은 아니고, 대신 이 부분을 이렇게 옮겨 보면 따로 노는 느낌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요?" 하고 답해줄 뿐이다. 어떤 부분에서 문제를 느끼는지 이야기해야 상대의 아이디어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답변을 해줄 수 있는 것 같다. 교육 쪽은 컴퓨터공학만큼이나 오래전에 손을 놓았는데 이 녀석 또한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주변을 맴돌더라.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하고 물으면 "이렇게 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를 명확히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그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것인지 판단하여 방향성을 제시해 주거나 내 영역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아무튼 잘 만들고 싶다"라고만 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도와주고 싶던 의욕도 사라지는 말이다. 상대가 의욕이 있어야 나 또한 의욕이 생기는 것 같다. 몇 해 전, 자신의 작품에 애정이 있는 독립출판물 작가에게는 보수에 대한 조건 없이 기꺼이 삽화 작업을 도와주기도 했다. 요즘 같이 공부하던 학생들 중에는 그래도 뭘 하고 싶은지가 명확한 사람이 많아서 이것저것 도와주러 다녔더니 학기 말에 여러 사람들이랑 좀 친해진 것 같다. 아직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구체화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했어요?" "하고 있어요?" 하며 잔소리만 하고 다닌 것 같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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