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8일 월요일 을사년 계미월 무술일 음력 윤6월 4일
"TL; DR"라는 표현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의역하자면 "세 줄 요약"이라고 할 수 있겠다. Too long; Don't read. 너무 길어서 읽지 않는다는 의미로 댓글을 달 때에도 사용되고, 그런 사람을 위해 본문에 짧게 요약된 내용을 덧붙일 때도 사용된다. 이 표현을 처음 접했던 게 내 10대 후반의 이야기니 사람들이 글을 읽지 않고 요약을 요구해 온 것도 꽤 오래된 일이다. 다만 인터넷의 활성화로 인해 글을 거부하는 그런 특성이 개인의 특성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히며는 게 가장 문제인 듯하다. 글을 읽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느낌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싫어했다. 책 읽는 걸 싫어한다는 데에 묻혀 인지하지 못했지만 글 읽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핸드폰을 사면 이것저것 건드려 보고 필요한 설정부터 하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사용설명서부터 정독하는 편이었다. 웬만한 것들은 사용설명서를 읽어본다. 읽을 수 있는 텍스트인데 읽지 못하고 넘어가 버리면 그곳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는지 궁금하고 상당히 신경쓰인다는 것은 최근에 새삼 인지했다. 막상 읽어보면 별 내용 아니었을 것 같은데도 말이다.
책 읽기를 싫어했던 건 몇 가지 이유가 중첩되면서 발생한 일인 듯하다. 초등학교에서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길 요구했는데, 나는 그렇게 감상을 쥐어짜는 걸 원치 않았다. 글을 읽고 드는 생각을 적으라는 시험 문제에 대해서는 뭐라도 적으면 점수를 준다는데 백지로 내곤 했다. 글쓴이의 의도나 심정을 묻는 문제 또한 거부감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순수한 input을 원했으나 output을 요구받아 점점 더 피하게 된 것 같다. 책 읽는 녀석에 대해 얌전한 범생이 이미지를 투영하는 것도 범생이 이미지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나에겐 피하고 싶은 부분이었고 말이다.
어린 시절의 글 읽기는 독서로 대표되기에 책 읽기를 거부하면 글을 읽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로 비춰지기 쉽다. 분명 그것은 글을 읽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아닌데 말이다. 아무도 독서 후 무언가를 할 것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을 무렵부터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새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즐기는 녀석으로 취급받고 있다. 나의 독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은 데다가 독서 편식이 심해 때로는 "책을 즐기는 녀석이 이 책을 모른다고?" 하는 취급을 받기도 한다. 유명한 고전 작품이나 한강 작가님처럼 유명한 작가의 책이 주로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