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9일 화요일 을사년 갑신월 경신일 윤6월 26일
인간의 외형을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심하다는 걸 요즘 새삼 느끼고 있다. 낯이 익긴 한데 누군지 모르겠는 사람이 말을 걸어 올 때가 있다. 상대는 나를 알아보는데 나는 상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특히 내 인지 범위에 존재하지 않은 지 몇 개월 정도 지나면 높은 확률로 상대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잊어버리기 전에 이름이라도 언급되면 기억할 확률이 증가하지만 언급조차 되지 않은 채 몇 개월이 지나면 어느 순간 완전히 사라져 간다. 통성명을 다시 하고 나서야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이름을 들으면 기억난다. 아무래도 나의 기억에 이름을 기준으로 인덱싱 되어 있는 모양이다. 인간의 외형은 최근에 인지 범위 내에 존재하고 있는 일부 사람들의 캐시 데이터로 존재할 뿐이다.
가끔 청년센터 같은 곳에서는 명찰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본명을 적을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식별 가능한 개체명을 상시 확인 가능하다면 그 사람이 누군지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창작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알렉산드르를 사샤라고 부른다거나 블라디미르를 발로쟈라고 부른다거나 예카테리나를 카챠라고 부른다거나 하는 것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떤 인물이 다른 옷을 입고 등장하는 것보다 더 알아보기 쉽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들은 주연급 인물조차 잘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인물들이 상호작용하고 있을 땐 맥락상 알아보는 편이지만, 어떤 인물이 중요한 사진이나 영상에 다른 누군가가 찍힌 걸 보고 놀랄 때 촬영된 대상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해 복선을 놓치기도 한다.
이 부분은 내가 가진 약점 중 하나로, 요즘은 그냥 주변 사람들에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누군지 밝히기 전까지 내가 알아보지 못함에 상처받진 않길 바란다. 이름을 듣는 순간 그 사람과 어디서 뭘 했던 사이인지 기억이 나지만 외형만으로는 나의 무의식 데이터를 탐색하지 못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