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8일 목요일 을사년 갑신월 기미일 음력 윤6월 25일
무언가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 것 같은데 뭐라 말로 설명하지는 못 하겠는 경우가 있다. "2년 정도면 뭔가 뭔가다" 같은 수준으로 설명이 안 된다.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은데 왜 설명이 안 되는지. 관련 분야로 엄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도 뭐라 말을 못 한다. 두루뭉술한 무언가로 남은 정보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OpenAI 주가가 떨어지는 이유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다른 집단에서 ChatGPT 이야기가 나왔을 때 관련 내용을 언급할 수 없었다. 개발자 수명 2년 어쩌고 하는 것도 대충은 알아들은 것 같은데 누가 물어보면 설명해 줄 자신이 없다. 그런 정보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내 생각과 감정마저도 제대로 설명할 줄 모른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어쩌면 20대 초반까지 책 읽기를 거부하던 녀석이 가진 고질적인 어휘력과 표현력 한계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단어와 표현을 접하며 살아오지 못한, 그리하여 결코 풍부해지지 못한 말들. 너무 오랫동안 글을 등지고 살았고 읽기를 거부해 왔다. 나의 읽기 역사는 5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한쪽에 치우친 독서 취향으로 인해 비슷한 부류의 책만 읽어왔다. 대부분의 소설을 읽기 어려워하니 문학적인 측면에서는 느는 게 없을 수밖에. 소설은 다 읽고 나서 '그래서 이게 무슨 이야기지?' 싶은 경우가 많다. 이렇다 할 감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명한 작가의 소설을 읽어 보아도, 명작으로 알려진 작품을 읽어 보아도, 그 책이 어땠는지는커녕 줄거리조차 이야기하지 못한다.
에반게리온을 보고 나서 "그래서 뭐였던 거지?" "뭐가 '오메데또'라는 거야?" 하는 것만큼이나 소설을 끝까지 읽은 후 그게 무슨 내용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많이 안 읽어봐서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해서 많이 안 읽게 되는 건지. 가끔 아주 드물게 (역시 온전히 이해했다고 하긴 어렵지만) 어느 정도 와닿는 무언가가 있는 소설도 있긴 하다. 그마저도 그 느낌을 설명할 수는 없다. 대표적으로 『데미안』이 그랬다. 가볍게 술술 읽혀서 재밌게 읽었던 기억은 있는데, 그리고 뭔가 와닿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오래되어서 기억나지 않는다기보다는, 그것을 읽자 마자도 그 느낌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지 못했다.
가끔은 그런 걸 설명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뭐시깽이가 깽깽하다는 식의 표현 말고, 좀 더 구체적인 어휘와 적절한 표현이 있을 텐데. 주변에 늘 적당히 말해도 적당히 알아듣는 녀석만 있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확실히 그런 걸 잘 알아먹는 녀석과 있을 땐 남들보다 편한 느낌이긴 하다. 내 생각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상대가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지는 역시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