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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Oct 07. 2024

#35 말높임

2024년 10월 7일 월요일 갑진년 계유월 갑진일 음력 9월 5일

어느 정도 친해진 사이라도 동갑이나 연하에게도 말을 놓지 않는 편이다. 연상이 말을 놓치고 해도 편한 대로 하라고 하고, 상대가 말을 놓아도 나는 잘 그러지 않는다. 충분히 친해지기 전이라면 더더욱 말을 놓는 것에 대해 어색함을 느낀다. 몇 해 전인가 언젠가는 충분히 친해지기 전에 말을 놓자고 하는 것에 동의했다가, 그 어색함에 되려 말을 잘 안 걸게 되어 더 멀어진 경우도 있었다. 그 와중에 충분히 친한 친구들하고는 대체로 말을 놓고 지내고 있긴 하다.


충분히 친한 친구들하고 말을 놓은 시기는, 솔직히 대체로 모르겠다. 그중 명시적으로 말을 놓자고 하고 놓은 상대는 아마 아주 오래 전의 린과 이반 밖에 없을 테니까. '친구의 친구면 친구지' 하는 논리로 말을 놓자고 했던 이반,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과 말을 놓기로 하는 타이밍에 끼어들어 같이 말을 놓은, 그 '다른 사람'의 친구 린. (이제 와서는 그 '다른 사람'은 어디서 뭐 하고 사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말고는 글쎄, 대체로 상호작용을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반존대를 거쳐서 말을 놓게 된 것 같다. 대충 20대 초반부터 그래 왔더라.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을 놓는 과정을 거친 첫 번째 존재는 아마 대학교 때 팀플 파티원들이었을 것이다. 스터디도 하고 팀플도 하고 하면서 이 사회성 떨어지는 녀석의 유사-친구로 있어줬던 녀석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이 정도면 친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지점을 넘어섰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장난칠 때 가볍게 반말을 섞어 썼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그냥 말을 놓고 있더라. 대학 졸업하고는 거의 연락도 안 하고 지내고 어디서 뭐 하고 사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존대로 시작해서 반존대를 거쳐 말을 놓게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초반부터 말을 놔 버린 예외 사항이 딱 두 명 생각난다. 덕수의 경우, 처음 인사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존대했으나 초면에 나를 너무 화나게 하여 하대하던 것의 영향으로 그 이후로도 그냥 반말을 해버린 것 같다. 지금은 그 사건은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애증의 관계처럼 투닥거리며 지낸다. 애초에 연락은 안 하고 지내지만 남쪽 동네 친구들의 일부로서 만나게 된다면 말이다. 그리고 별이의 경우, 글쎄? 이 녀석에게는 그냥 처음부터 존대한 적이 없었다. 첫인사부터 그냥 말을 놓고 시작한 것 같은데...? 왜지? 하여간 여러 모로 예외적인 녀석이다.


사실 이제는 그 정도 친밀도의 친구를 굳이 추가로 두지 않으려고 했는데, 뭐... 살다 보면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기도 하더라. 사람 일이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특히 인간관계란 나 혼자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다 보니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나와 상대와 상황의 상호작용. 수많은 변수 속에서 우리가 도달할 지점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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