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7일 수요일 을사년 기축월 신사일 음력 11월 19일
9시 조금 넘어서 나가야지 해놓고 늘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에 집을 나서게 되는 건 왜일까.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일정이란 늘 그런 걸까.
어제저녁에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까먹었다. 역시 생각이 났을 때 뭐라도 적어놔야 한다. 어딘가의 가사처럼—. "자, 이때 잡지 못하게 되면 사라져 버려. 뭔가 나올 때까지만 좀 기다려, 시간을 줘. 딱 꽂혔을 때 가만히 생각을 해봐. 뭐라도 적어놔야 하는데— 백지잖아." 적어놓지 않은 무언가는 그렇게 사라져 버리곤 한다.
말 나온 김에 가사에 대한 이야길 해볼까. 나에게 음악은 소설과 같다. 소설의 한 구절을 필사하듯 흥얼거린다. 난 이야기가 좋은 노래를 좋아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분위기만 내는 노래를 거부한다. 양산형 인터넷 소설 같은 노래를 꺼려한다. 알맹이가 있는 노래를 좋아한다. 21세기 들어서 그런 노래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서 오래된 노래를 듣거나, 가요보다는 뮤지컬 넘버를 듣게 되었던 것 같다.
요즘은 노래를 잘 듣지 않는다. 하지만 그 노래는, 그 가사는, 그 이야기는 내 머릿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네 머릿속엔 이야기만 수천 개야, 톰." 앨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앙리나 요하네스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정답을 찾아 헤맸지만 그런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토마스가 되어 버렸다. "근데 이제 좀 시원하지 않니?"
인간불신에 빠져 "아무도 안 믿어"를 외치면 1998년을 살아가는 형씨가 다가와 말을 건다. "남을 깎아내릴 기력 있었다면 널 위해 쓰는 편이 나았을걸." 타인에 대해 부정적인 에너지를 쓸 바에야 그만큼의 에너지를 자길 위해 쓰는 게 더 이롭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무의식 저편에서 들려오는 멜로디에 그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