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요일 갑진년 을해월 계사일 음력 10월 25일
이 글은 언젠가 서비스 종료된 플랫폼에 작성했던 글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기존에 작성된 글은 2022년 1월 7일 금요일에 작성되었다.
무언가 쓰고자 하는 글이 생겼는데 쓸 여유가 없을 때, 키워드를 적어 놓고 나중에 시간 날 때 쓰는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그렇게 해보았으나, 단지 키워드만 적어 놓아서는 무엇을 쓰고자 했는지 알 수 없더라. 어쩌다 하나 드물게 알아보는 것도 있긴 하지만 매우 낮은 확률이다. 적어도 두어 문장 정도의 끄적임은 남겨 놓아야 언젠가의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키워드만 적어 놓는 것보다 오래 걸릴뿐더러, 이렇게 한다고 떠올릴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적어놓은 문장들을 기반으로 글을 써내려 갈 때, 완성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방향을 잃은 글은 끝에 도달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다. 때로는 장황하게 써 내려간 글조차 구구절절한 무언가가 되어 이도 저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 그렇게 완성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된 글에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글의 가치를 논한다는 것. 글쎄, 뭘까. 혹자는 모든 글에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지금보다 디지털 친화도가 떨어지던 시절에는 글을 키보드로 바로 작성하지 못하여 종이에 써내려 간 후 마지막에 타이핑하곤 했는데, 이야기를 써내려 가다가 그저 구구절절한 주저리가 되어 버리면 그 종이를 그대로 고이 접어 종이 쓰레기로 보내 버리곤 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나에게 나의 그런 글은 아무 가치가 없기에, 몇 문장이나 몇 문단 정도 쳐내고 이어 쓰는 게 불가능하다 싶으면 그동안 끄적였던 것을 과감히 날려 버리는 것이다.
짧게 작성해 둔 내용만으로는 유의미한 무언가가 나올 것 같던 주제에 대해서도 쓰다 보면 그저 반복적으로 같은 말만 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그만두기도 한다. 글은 어느 정도 타이밍인 것 같다. 그래서 토마스 위버가 앨빈 켈비에게 그랬던 걸까, 싶기도 하고.
느낌이 온다면 앨빈 시작인 거야
스쳐가는 요만한 아이템 이걸 하나 잡는 거야
그러다 글빨이 착착 오르게 되고 이게 바로 창조의 예술
이제 시작이야
자 이때 잡지 못하게 되면 사라져 버려
뭔가 나올 때까지만 좀 기다려 시간을 줘
딱 꽂혔을 때 가만히 생각을 해봐
뭐라도 적어 놔야 하는데
― Here's Where It Begins,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지금도 언젠가 써야지 하고 쌓아둔 주제가 서른 개 정도 있는데 잘 소비되지 않는다. 그것을 붙잡고 있어 봤자 원래 쓰고자 했던 느낌은 나오지 않고 주제만 물고 늘어지는 문장의 연속이 되어 버릴 것 같을 땐 또다시 언젠가의 미래로 넘기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무언가에 딱 꽂혔을 때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이라면 참 좋을 텐데 싶다. 시간을 멈춰 놓고 나 혼자 이야기를 써내려 간 뒤 시간이 다시 흐르도록 할 수 있다면. 하지만 우린 그 찰나의 순간을 찰나의 순간으로 보낸 채 언젠가 적당한 시간이 나길 기다려야 한다. 그 찰나의 순간에 느낀 무언가가 얼마나 남아있을진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