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 일요일 갑진년 을해월 임진일 음력 10월 24일
광기의저택과 글룸헤이븐, 그리고 노터치크라켄 때문에 잊고 있었는데, 나는 원래 보드게임을 정말 싫어했다. 나의 호불호조차 잊게 만드는 것들은 대체 뭘까. 대학생 때 동아리방에서 보드게임을 접했고, 그것이 뱅이었다. 나는 도저히 그 게임을 쫓아갈 수 없었고, 그대로 보드게임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다. 그 규칙을 익히는 것도 게임을 해나가는 것도 무엇하나 쉽지 않았다.
보드게임을 하며 전략을 세우고 사람들과 경쟁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며 거부하던 내가 처음 접한 협력 게임이 광기의저택이었다. 보통 내 삶에서의 보드게임을 언급할 땐 그 앞의 부정적인 기억들을 생략하고 이 광기의저택을 첫 번째 게임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역시 나의 기억 속 부정적인 부분은 의식적으로 떠올리려고 하거나 어떠한 트리거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무의식 너머 저편에 숨겨져 있는 경향이 있다. 한창 코스믹호러 장르에 조금 발을 들이고 있던 때라, 큰 거부감 없이 함께 했다. 언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순간이 많아서 내가 직접 판단하고 행동한 턴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지만 말이다.
청년이음센터 청년공간 광진점에서 노터치크라켄을 처음 접했을 때는 여전히 보드게임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던 때였다. 하지만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사람들이랑 상호작용하고 싶은 마음에 함께 하겠다고 하였다. 그날은 클라이밍 동아리에서 앞으로 어느 암장으로 갈지, 정기권과 횟수권 중 어느 것을 할지, 정기모임은 언제 할지 회의를 하기로 한 날이었는데, 그 회의 전까지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시간이었다. 다들 이 게임을 너무 많이 하니 누가 이걸 하자고 하면 또 크라켄이냐고 하곤 하지만, 사실 난 꽤나 좋아한다. 내가 온전히 즐겨본 첫 번째 보드게임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에 대한 진실을 감추는 마피아 게임은 어려워하는데 내가 아니라 내 소유의 카드에 대한 진실을 감추는 게임이라 마피아 게임류임에도 할 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룸헤이븐은 조금 플레이해 봤는데 어렵다. 플레이하기 전부터 어려워 보였는데, 해보니까 역시 어렵더라. 그리고 나는 그것을 플레이하는 것보다 번역하는 것이 더 재밌다고 주장했다. 6월 초부터 9월 초까지 3개월 동안 크림슨스케일의 초벌 번역을 마쳤고, 9월부터는 일경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 속도가 많이 느려진 채 간간이 트레일오브애쉬 초벌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 일경험 프로그램도 마무리되었으니 다음 주부터는 다시 또 작업 시간을 늘려보려 한다.
생각해 보면 언젠가 어딘가의 보드게임 모임에 따라갔다가, 보드라이프에서 난이도 1.82로 취급하는 게임조차 어렵다고 못 따라갔던 기억이 있다. (보통 난이도보다는 '웨이트[weight]'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1.0~5.0 사이에서 책정되는데, 참고로 노터치크라켄의 난이도가 1.14이고 펭귄파티의 난이도가 1.13이다.) 난이도 2점대의 광기의저택은 파티원의 도움을 받으며 나는 거의 구경만 하는 느낌에 가까웠고, 난이도 3점대의 글룸헤이븐은 조금 플레이해 봤다고는 했지만 내가 직접 조작한 턴이 단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난이도 1.48의 다빈치코드 정도가 내가 어려워하면서도 어떻게든 플레이 가능한 마지노선인 것 같기도 하고.
새삼 이것저것 검색해 보는데 독수리눈치게임이 1.17이고 셀레스티아가 1.32고...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게임 중에는 1.5를 넘기는 녀석이 없는 모양이다. 그 와중에 대학생 때 정신력 고갈로 플레이를 포기하며 보드게임을 거부하게 된 뱅이 1.29구나? 방탈출에서 공포 테마가 난이도 수치에 비해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처럼 나에게 있어서 마피아 게임류는 좀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오, 1.5 넘는 거 하나 발견했다. 티켓투라이드가 1.83. 나의 정신력을 또 고갈시켜 완전히 리타이어 하게 만든 아임더보스가 1.97이고 말이지... 하여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