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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Nov 22. 2024

#79 욕망

2024년 11월 22일 금요일 갑진년 을해월 경인일 음력 10월 22일

세상이 변하고 또 우리의 생각들도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는 와중에 마주한 또 하나의 변화. 언제부터인가 나의 욕망을 더 드러내고 있다. 한참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살아온 것 같은데, 최근 들어 뚜렷한 욕구를 드러내는 일이 종종 있다. 해야 하는 일을 관성적으로 선택하기보다는 그것을 살짝 등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든다거나.


좋고 싫은 것이 어느 정도 명확한 편이긴 했다. 스펙트럼상의 중립 부분에 해당하는 것들이 많아서 그렇지, 양쪽 극단에 존재하는 소수의 것들에 대한 감정은 명확했다. 단지 그 명확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좋아하는 것에 더 뛰어들려고 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막 피하려고 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운 좋게 좋아하는 것을 마주치면 좋은 거고, 어쩌다 싫어하는 것을 마주쳐도 어쩔 수 없는 거고.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피하려고 하지 않아 부정적인 감정과 마주치게 되기도 했다.


싫어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것도 기회가 되는 한 붙잡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겹쳤을 땐 더 강한 감정에 따라 판단하기로 했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나의 바람대로 살아가야지. 어쩌면 꽤나 당연한 삶의 방식인데, 오랜 시간 무언가에 의해 억눌려 왔던 것 같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의식의 어딘가에서 나를 갉아먹고 있었겠지.


작년 하반기, 청년이음센터에서 활동할 때는 존재 자체로 나에게 정서 불안을 야기하는 청년이 있어도 그 청년의 프로그램 참여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프로그램에 참여하곤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함께 하는 날이면 복지사 선생님 옆에 딱 붙어 활동했던 것 같다. 그래서 권역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는 다른 청년 분들이랑 상호작용하기보다는 우리의 담당 복지사인 우YB 선생님 곁을 맴돌았지.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이 사람 옵니까?" 하는 것을 늘 물어보고 참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청년들끼리 자체적으로 모일 때는 그런 것을 좀 더 편하게 물어볼 수 있으니 피하고자 하는 이를 적당히 피할 수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그런 것을 잘 물어보지 않고 참여하여 불편한 사람을 마주치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늘 물어보고 있다. 모든 순간에 피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다른 활동에서는 괜찮지만 특정 활동을 할 때만큼은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러고 보면 거긴 나의 호불호에 대한 스펙트럼이 잘 드러나는 곳이다. 긍정적인 상대 두어 명, 부정적인 상대 두어 명, 그리고 나머지 모두가 중립. 늘 그렇듯 중립의 비율이 높다.


몇 개월을 미뤄왔던 서울둘레길 걷기를 시작한 것도, 일을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다가도 일경험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었던 것도, 이번 하반기에 시작된 이것저것은 충동적으로 차오르는 나의 욕망을 한 순간 붙잡아서 실체화시킨 결과물이다.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의 영역에 존재하지만 의식의 영역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된다면 더 많은 것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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