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1일 수요일 갑진년 계유월 무인일 음력 8월 9일
아마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일 것이다. 어쩌면 3학년 때의 일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고 해서 특별히 더 공부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끼짝거렸던지라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느낌이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열심히 공부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내신 성적을 보지 않는 전형으로 입시를 준비했고, 수능 점수도 최대한 반영이 안 되는 곳으로 지원했고, 내세울 게 없어 자기소개서나 면접 같은 것도 피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조건 하에 가까운 학교들로 지원했다. 누가 봐도 상상상상향인 곳도 있었고, 애초에 상향밖에 지원을 안 해서 안전빵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소리를 들었다. 그다지 열의가 없던지라 대학 못 가면 그냥 안 가려고요, 라며 적당히 지원했는데 수리논술 100%인 전형으로 합격해 버렸다. 이제와서는 수학조차 그다지 잘 하진 못 하지만.
사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그 당시 내가 내세우던 좌우명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 뿐이다. 현재의 현실에 집중하자. 집중이라는 걸 잘하지 못해서 의식적으로 집중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도 일경험 프로그램에서 자꾸 옆 사람한테 말 걸려고 하는 걸 열심히 참고 있다. 무엇보다 옆 사람은 멀티가 잘 안 되는 타입이라고 하여 (왜인지 모르겠지만 INFP들이 주로 그런 말을 많이 하더라) 말을 거는 순간 집중이 흐트러지고, 흐트러지면 다시 집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멀티가 안 되는 사람은 몇몇 만나봤지만 그 정도로 멀티가 안 되는 사람은 INFP 밖에 없던 걸 생각하면 MBTI라는 거, 나름 정확할지도? 하여간 내가 봐온 INFP들이 있기에 최대한 말을 안 걸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에 집중하자고 하는 것은, 내가 현재가 아닌 다른 시간대에 자주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언젠가의 이야기.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의 이야기에 빠져 당장 이 순간을 놓친다거나. 불확실하고 막연한 미래에 치여 무의미한 망상을 하거나 예기불안에 빠져 버린다거나. 그런 시간 속에서 현재를 놓치고 사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이제 와서는 앞뒤 안 살펴보고 현재만 사는 녀석이 되어 버렸지만. 지금은 과거에 매몰되지 않는다기 보다는 그러지 못하는 건데, 언제부터인가 지난 일을 떠올리려고 하면 머릿속이 뿌옇고 잘 떠오르지 않는다. 탐색 기능이 결여된 시스템처럼 찾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르는 기억만이 내가 접근할 수 있다.
현실에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당시 나는 현실을 살아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시간대의 이야기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 것뿐만 아니라, 같은 반 학생들과 상호작용하기보다는 소셜 미디어 속에 살곤 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래리라는 이름의 파랑새였을 것이다. 래리는 이제 존재하지 않고 X 되어 버렸지만... 그래, 래리는 트위터의 마스코트다. 트위터가 트위터였던 시절을 떠올리며... 내가 계정을 처음 만든 건 11살 때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건 2년이 지난 후인 13살 때고 말이다. 그렇게 중고등학생 때 내내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살다가, 무기력해지면 계정을 동결했다가, 살 만해지면 다시 돌아갔다가를 반복했다. 이제는 당시에 쓰던 계정은 해킹당해 정지된 상태로 방치해 버렸고, 이후에 새 계정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현재의 현실에 집중하자. 내가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나. 때로는 과거에 했던 생각이 현재에 하는 생각보다 더 그럴듯하고 유의미한 무언가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었지, 하며. 왜 한참을 잊고 살았을까 싶기도 한 말들도 있다. 언젠가의 좌우명, 이 한 문장도 그런 말 중 하나였다. 항상 또 잊어버리지만 결국엔 다시 생각나고야 마는. 그러고 그렇게 돌아보게 만드는. 문득, 당신의 마음속에도 그렇게 존재하는 과거의 말이 있을까, 어떤 말이었을까, 불특정 다수를 향해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