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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다니 Jan 26. 2016

아무도 읽지 않는

나의 일기장



초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8살이 되면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나의 일상을 기록해왔다. 물론 처음엔 '오늘은 친구와 비디오를 봤다. 참 재미있었다.' 식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공간감을 떨어뜨리는 어설픈 그림으로 꽉 채운 그림일기였다. 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기 위해서 혹은 일기장을 제출하지 않아 혼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나는 참 열심히 일기를 써왔다.


중학생 때는 더 이상 학교 선생님이 일기장을 검사하지는 않았지만 때마침 사이버 일기장인 '싸이월드'가 유행을 했다. 덕분에 나의 일상은 끊임없이 기록될 수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다이어리 꾸미기로 학업 스트레스를 풀었다. 어찌나 열심히 다이어리를 꾸며댔는지 옆 반에 모르는 친구들까지 구경을 올 정도였다.


학창 시절이 지나 더 이상 내게 일기를 쓰라고 강요한 사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쉬지 않고 일기를 썼다. 남들보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터라 기록에 대한 약간의 강박이 있어서였다. 덕분에 가끔씩 추억을 되새김질할 수 있어 만족했다. 그 당시엔 시시콜콜했던 이야기들도 시간이라는 필터를 끼우면 아련한 추억으로 변모했으니까.


그런 나의 이야기들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에 힘입어 몇 년 전엔 내 일기를 모아 독립출판까지 해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일기장을 훔쳐본다는 것은 두렵고도 설레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공감이 되었다거나 위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면 내 글을 꽁꽁 감추기보단 나누길 훨씬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향해 치열하게 발버둥 치던 시간들이 지나고 이상과 현실의 줄다리기에서 이상이 조금씩 힘을 잃어갈 즈음, 나는 아무도 읽지 않는 의무적인 기록들만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먹었고 무엇을 했고 하루하루의 스케줄만을 의미 없이 기록했다. 물론 그런 기록들조차도 나중에 보면 어떤 의미를 갖게 되겠지만 나는 점점 갈증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고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고 싶고 나의 모자람을 이해받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일기를 쓰기로 했다. 아무도 읽지 않던 나의 일기장이 누군가의 손으로 배달되어 잠시나마 휴식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어차피 나의 마음은 글을 쓰면서 치유될 테니까- 그러니까 난 오늘부터 아주 이기적인 글쓰기를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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