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다니 Jul 17. 2018

배낭의 무게

이보다 더 무거울 순 없다



올해의 시작과 함께 다녀왔던 한 달 간의 미국 여행이 내게는 첫 장기여행이었다. 꿈꾸던 배낭여행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지만 사실 날 잡아 먹을 듯한 커다란 배낭을 어깨에 메는 순간, 내게 배낭은 더이상 꿈이 아니라 그냥 짐덩어리였다. 그래도 내가 캐리어 대신 배낭을 선택했던 이유는 몇 번의 여행을 통해 이미 캐리어의 단점에 질렸기 때문이었다. 배낭을 가져가면 먼저 두 팔이 자유로웠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할 때 팔에 잔뜩 힘을 주어야 할 일은 없었다. 또 울퉁불퉁한 길에서 시끄러운 바퀴소리를 낼 일도 없다. 물론 배낭을 오래 메고 걷다 보면 당연히 어깨와 허리가 짓눌리지만 어쨌든 움직이기에는 배낭이 훨씬 편하다고 느껴졌다.


사실 한 달이 엄청 긴 시간은 아니지만 장기여행의 예행 연습을 해보기에는 충분했다. 중간에 빨래도 종종 해야했고, 게다가 한 달 동안에 4계절을 다 경험했기 때문에 필요한 짐의 종류도 다양했다. 이런 한 달 간의 패턴이 몇 번 더 반복되는 것이 곧 장기여행이겠구나 싶었다. 이 여행을 통해서 나는 장기여행에서 꼭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들에 대해 정리했다. 그리고 그 메모를 읽고 기억을 다시 떠올려가며 이번 세계반주 여행의 배낭을 하나씩 꾸리기 시작했다.



손으로 들어보면 별 것 아닌 무게가 신기하게 배낭 안에만 들어가면 엄청나게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 정말 이상했다. 빼나 안 빼나 무게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만 같은 물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물건들이 모여 이루는 무게는 정말 상당했다. 게다가 40리터 배낭에 넣을 수 있는 부피에도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배낭을 펼쳐놓고 물건 하나 하나를 손에 쥐고는 계속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게 되었다. 이 물건이 정말 필요할까? 얼마나 자주 쓸까? 쓰다 버려도 될까? 망가지거나 잃어버려도 괜찮을까? 대체할 것은 없을까? 현지에서는 구할 수 없을까? 그렇게 고민 끝에 물건을 고르고 골랐지만 그래도 배낭은 턱없이 작았다.


배낭의 무게가 늘어날수록 여행의 즐거움은 감소한다고들 한다. 그래, 10키로! 이보다 더 무거울 순 없다. 나는 10키로를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필요하다 생각하고 넣으려던 물건들을 하나 둘 내려놓기 시작했다. 큰 메인배낭에 들어가는 짐은 크게 의류와 신발, 세면용품, 화장품, 전자기기 충전기 정도인데 그 중에 가장 큰 부피와 무게를 차지하는 건 의류였다. 용도별로 종류별로 다양하게 챙겨가고 싶었지만 무게를 떠나 부피에도 한계가 있으니 옷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답이었다.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배낭의 지퍼를 잠그기에 가까스로 성공했다. 그러나 10키로를 넘지 않는 건 도저히 힘들었다. 게다가 메인배낭 말고도 중요한 물건들을 담은 보조배낭과 크로스백까지 있으니 다 해서 20키로나 안 넘으면 다행이었다.



어째서 이렇게나 짐이 많을까 한탄스럽고, 도저히 미니멀라이프를 살 수 없는 내가 바보기도 했다. 꾹꾹 눌러 담은 터질 것 같은 배낭이 내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없으면 좀 어때? 이렇게 쿨한 마음으로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평소 쓰지도 않던 물건들까지 다 생각나고 난리인지. 최소 일주일에 2번 이상 쓰지 않을 것 같다면 과감하게 빼라는데 왜 전부 매일 쓸 것만 같은지-


이 여행을 통해 나는 얼마나 비우고 돌아올 수 있을까?

여행이 끝날 때 배낭이 더 가벼워지는 기적이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알 길이 없다. 여전히 뺄 물건보다 챙길 물건이 자꾸만 생각나는 날 보면. 물건들을 내려놓고 이별하는 순간에도 미련과 집착이 떠나지 않는 날 보면. 이제 정말 꾹꾹 눌러 담은 무거운 배낭을 등에 지고 떠날 일만 남았다.


미우나 고우나 처음부터 끝까지 내 여행의 동행이 되어줄 배낭아, 아무쪼록 잘 부탁해!



매거진의 이전글 세계반주 여행 루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