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니 Sep 26. 2024

교육의 경계선상에 서 있는 나

매니토바에 살 때도 그랬지만 알버타에 이사해 넘어와서도 한국인 이민 1세대가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참 어렵다. 이민 1세대가 정규직 선생님 보직을 맡는 것도 드물뿐더러 대부분이 인도에서 넘어온 선생님들이 많기에 오히려 아시아계, 특히 한국 사람인 동료 선생님을 지난 9년 동안 딱 한번 만나봤다. 


공교육에 몸을 담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계속해서 나에게 질문하게 된다. 내가 자라면서 받은 교육은 항상 경계선상에 서있었기 때문에 내가 가르치는 교육의 양질이 캐나다의 경계선상에 서게 만들진 않을까, 과연 내가 가르치는 방법이 맞는 걸까 (북미엔 교과서가 없다 포스트 참조), 내가 이 내용을 배울 때 어떻게 배웠던가, 등 여러 가지 생각과 고찰을 하게 된다. 사실 교육대학을 다닐 때보다 더 많은 사색과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환경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면서도 경계선상에 있었던 나이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게 어색하진 않았다. 전라남도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며 초등학교 2학년 여름에 홈스쿨을 시작했다. 홈스쿨이 뭔지 잘 몰랐던 우리 가족은 전형적인 홈스쿨의 형태를 따르기보단 교육목표가 없는, 아니, 교육 목표를 성취했는지 확인이 안 되는 노스쿨링의 형태를 따랐고, 노스쿨링의 교육 형태와 한국 사회의 편협한 시선과 오만한 편견들에 짓눌리는 경험을 했던 때도 있었다. 이후 대안학교를 다니기도 했고, 결국 다시 홈스쿨링을, 그리고 다른 한국인들과 같은 교육의 종착지인 것처럼 대학에 입학했다. 비록 한국에서 대학을 다닌 기간은 1년이었지만,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나는 교육의 경계선상에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그 고민하고 견디던 작은 시간들이 쌓여서 삶이 되기에 지금의 나는 더 깊고 더 철학적엔 경계선상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긴 하다. 어린 시절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공교육 산하의 정규교육을 받으며 자라지 않은 내가 이젠 공교육 산하의 정규교육을 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사실 내가 가지고 있던 '공교육'에 대한 경계가 더 늘어나긴 한다. 사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캐나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캐나다의 공교육엔, 적어도 초등학교엔, 성적을 앞세워 아이들이 아이들일 수 있는 권리를 빼앗지 않고, 선생님들이 학습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한 자유가 보장된다. 학생들이 모두 다르게 배움을 인정하고 학생들의 필요와 학습 방법에 따른 교수방법을 찾고 학교 안에서 상주하는 교육 보조 선생님들과 협업할 수 있는 서포트를 제공한다. 한국 공교육에 먼저 몸을 담았더라면 나는 아마 이 캐나다의 공교육 시스템에 발들여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는 게 하루가 지날수록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스스로 생각하고 교수법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 교육 시스템이 아마 나같이 교육의 경계선상에 서있던 사람을 오히려 더 보듬어가 주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교육의 경계선상에 서서 어떤 길로 가는 게 맞는 것일까 고민하는 나, 공교육의 대안이 되는 교육을 받았지만 결국 공교육의 시스템에 들어가 최종학력을 마친 나, 그리고 한국의 공교육은 답답해하면서도 캐나다의 공교육을 지지하는 나. 


경계인인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