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 입성기 (용량폭탄 주의)
오늘 탄 거리: 50km (Stuebenville ~ McDonald)
총 이동 거리: 4991km
비가 온다. 보슬비로 시작했는데 아침을 먹고 열시쯤 나가려고 하니 폭우로 변했다. 천둥 번개도 친다. 우중 라이딩이 무섭지만 여기서 하루 더 있는 건 좀 끔찍한 것 같아서(동네가 완전 게토라 아무것도 없다...) 피츠버그로 일단 향하기로. 에어비엔비에 마침 25달러짜리 숙소가 떴길래 보자마자 바로 예약을 했다.
빗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건 이번 여행에서 처음이다. 적어도 이런 폭우 속에서 타는 건 처음인듯. 예보는 하루종일 비이지만 피츠버그까지 한 60km 정도만 달리면 되기때문에 일단 비를 맞고 달렸다.
언덕을 오르면서 이러다 번개에 맞아 죽는게 아닌지 싶기도. 번개에 맞거나 차에 치이거나 둘 중 하나로 골로 갈것 같았지만 다행히 무사히 통과했다. 차 한 대가 지나가면서 'get off the road'라고 소리 지르기도 했다. 이 동네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언덕을 한시간 동안 넘으니 드디어 평지 도착. 조그만한 강을 따라 자전거길이 피츠버그까지 연결되어 있다. 길이 흙으로 되어있어 바퀴가 푹푹 파이긴 했지만 탈만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그 길을 한 두 시간 정도 달리니 너무 배고파서 조그만한 마을에 있는 바에 들어갔다. 안에는 심슨가족에 나오는 Moe's 같은 분위기가. 한 네 명 정도의 손님이 있었는데 다 동네사람이라 서로 아는듯 했다. 그리고 한 명 더, 자전거 여행객 Markus가 있었다.
이런 외진 마을에 있는 바에서 자전거 여행객을 만날 줄이야. 그는 시카고에서 피츠버그까지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자전거 여행만 40년을 했다고 한다. 마침 뉴욕 근처에 살아서 그쪽으로 가는 길에 대해 상세한 조언을 얻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다 낮 1시인데도 엄청나게 취해 있었다. 마을에 천 명이 살고 있는데 서로 대부분 아는 사이라고 한다. 한 명은 내가 LA에서 왔다고 하자 자기는 포고 스틱을 타고 LA로 갈거라고 술주정을 했다.
그렇게 술주정을 한 시간 정도 듣다가 피곤해져서 Markus와 나왔다. 출발하기 전에 Airbnb 호스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계속 나보고 어디로 자기가 이동하면 되겠냐고 물었다. 무슨말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까 숙소가 자기 차라는 것... 아니 세상에 자기 차를 숙소로 내놓는 사람이 다 있나.
엄청 열 받지만 상세내용을 읽지 않고 가격만 보고 예약한 내 잘못이기에...(사진이 어쩐지 차 사진이더라) 일단 환불은 못하니 근처까지 와서 차나 태워 달라고 했다. 그리곤 피츠버그에 있는 호텔을 하나 잡았다.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Markus와 같이 타는데 오랜만에 다른 사람과 함께 타니 너무 좋더라. 자기 어렸을 적 여행 이야기들을 해주면서 나보고 젊을 때 많이 돌아 다니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곤 나중에 뉴욕에서 한 번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에어비엔비 호스트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차에서 누군가가 멀리서 손을 흔들면서 나를 반겼다. 엄청 얄밉지만 누굴 탓하리. 그래도 택시비로 생각하면 25불보다는 훨씬 더 멀리 있는 거리이니까 아주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주로 토요타 프리우스를 찬양하는 이야기, 좀 솔깃했다) 피츠버그에 도착. '낚인' 내가 미안했는지 오늘이나 내일 공짜로 자기가 태워주겠다고 한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호텔로 들어갔다.
호텔에서 씻고 난 뒤 관광객 모드로 다시 길거리에 나왔다. 마침 호텔이 피츠버그 전경을 잘 볼 수 있는 Mt Washington 바로 앞에 있다. Mt Washington 정상을 이어주는 트램을 타고 올라가서 저녁을 먹고 산책을 했다.
피츠버그 오는 길에 비를 맞고 뒤통수도 맞았지만 야경을 보니 기분이 풀렸다. 여태 여행 중에서 본 야경 중에선 제일 이쁜 것 같다. 너무 복잡하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도시스럽다. 야구를 못 봐서 아쉽지만, 내일은 드디어(그리고 진짜로) 한국 음식을 먹으러 가기에... 기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