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돈, 돈
들어가기에 앞서 모든 부트캠프는 쓰레기이며 시간, 돈낭비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부트캠프를 통해서 짧은 시간 안에 기술을 습득하거나 커리어전환, 취업을 하는 분들도 분명히 있으며 어디까지나 좋은 부트캠프와 참여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는 현재 회사에서 SW엔지니어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을 엄밀하게 정의하기에는 어떤 순수한 소프트웨어보다는 좀 잡다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그리고 나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어떤 순수한 개발자는 아니다. 주전공은 항공우주공학이었고 빅데이터연계전공이라는 (컴퓨터공학+산업공학을 합쳐놓은 코스) 기묘한 복합전공을 이수하였다. 나의 프로필을 보면 알겠지만 어떻게 보면 방산이라는 제조업 기반 산업에 기계 도메인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SW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이해관계가 작동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실제로 내 포트폴리오도 기계와 SW가 짬뽕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학교를 다니면서 처음부터 SW를 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아니고 (그럴 거였으면 항공우주를 안 했지...) 새로운 것을 결정하기에는 조금 늦은 시기 3학년쯤으로 기억한다. 전과를 하거나 복수전공을 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 되어버려 차선책으로 복합전공을 들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트캠프를 알게 되었고 졸업 후에는 바로 취업을 하기보다 일명 싸피(SSAFY)라고 부르는 삼성소프트웨어 아카데미에 지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싸피는 면접에서 떨어졌고 복합전공을 듣다가 졸업사정도 꼬였던 터라 학교에서 고용노동부와 같이 운영하는 KDT 부트캠프를 병행하며 취업준비를 하였다.
코로나와 부트캠프
진로를 고민하던 대학교 3학년일 때 코로나가 퍼졌다. 코로나는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는데 비대면으로 많은 것들이 전환되었다. 그렇게 비대면 IT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해 줄 개발자가 급격하게 필요해졌으나 그만한 개발자 공급이 따라오지를 못해 인건비가 급상승하였다. 이런 현상을 가지고 대대적인 홍보와 마케팅을 한 곳이 있으니 바로 부트캠프다. 부트캠프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일종의 취업사관학교 같은 느낌으로 정식으로 학위를 주거나 인가된 교육기관은 아니지만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정도로 집중 교육으로 수강생들을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곳이다. 꼭 취업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단기간에 어떤 기술을 습득할 때도 유용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내가 백엔드 개발자인데 프론트 업무를 맛보고 싶을 때 짧게 몇 달 동안 프로젝트 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부트캠프보다는 4년짜리 대학 정규교육을 듣거나 하다 못해 컴퓨터공학 복수전공을 하는 것이 좋겠지만 모두에게 같은 시간과 기회가 주어진 것은 아니니 짧은 교육기간 만을 두고 지나치게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부트캠프와 취업시장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알아야 할 것들이 있는데 취업시장도 "시장"이라는 점이다. 즉 돈이 되는 어떤 것이 있다는 이야기며 여기서 부트캠프의 돈은 취업준비생(수강생)이다. 그러니 부트캠프는 당연히 현실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일단 많은 사람을 모으면 되기에 보다 화려하게 포장하고 꿈만 같은 광고를 하는 마케팅을 한다. 이제 나의 경험으로 시작해보고자 한다. 직업을 구하는 데 있어서 시장은 크게 두 가지 형태의 모습을 하고 있다.
1. 시장이 크고 구인구직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지점
2. 시장이 작고 일반적인 경로로는 알기 어려운 니치(niche) 마켓
여러분이 구직자라면 어떤 시장이 유리하다고 생각할까? 사실 취업준비생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알 수 있는 것과 결국 내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1번 시장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공기업, 대기업 공채, 공무원, 전문직 자격증 같은 오픈되어 있고 비교적 명확한 시장이다. 2번의 경우 특별히 내가 관련된 종사자이거나 '우연'하게 경험하지 않는 이상 알기가 어렵다. 나 역시도 취업을 위해서 1번을 준비하였으나 우연한 기회로 대기업의 합작회사에서 먼저 연락을 받게 되었는데 항공우주공학도의 지식(항공기 좌표 계산)과 취업포트폴리오로 준비하던 컴퓨터비전 지식이 맞물려 적절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경험에 빗대어 어디가 수월하게 취업할 수 있을지 확률에 베팅을 한다면 2번이 확률이 높다.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시장이다 보니 플레이어들이 적을 수밖에 없으며 특정 종사자가 독차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번 시장의 경우 잘 알려져 있어 경쟁자가 많으며 금방 대체될 가능성도 높다.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바로 이해하겠지만 부트캠프는 기본적으로 1번 시장을 목표로 만들어진 곳이다. 시장이 큰 곳에 그 수요에 "대충"적합한 수강생을 부어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취준 할 때 메모해 둔 글인데 어디에서 보았는지는 잊어버렸지만 인상 깊었던 문구가 있었다.
Near Fit이 아닌 Exact Fit이 될 것 "대충 직무에 맞는 사람"보다 "정확히 일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단편적인 문장이 절대적인 사실은 아니겠지만 부트캠프는 분명 전적으로 Near Fit 한 사람들을 많이 만드는 것에 큰 열을 올린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이게도 수료자의 취업 질을 떨어지게 할 수밖에 없다. 다른 곳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구체적인 잡 디스크립션(Job Description)을 작성하고 최대한 적합한 지원지를 뽑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그저 그런 사람들 마치 붕어빵에서 틀에 찍어내듯이 널려 있다면 이는 경쟁력이 있다고 하기가 어렵다.
이어지는 두 번째 문제는 공통적으로 꼽는 부트캠프 수준이다. 내가 많은 여러 종류의 부트캠프를 들은 것이 아니기에 단적으로 평하기 어렵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내가 들었던 KDT 부트캠프의 교육 수준은 형편없었으며 커리큘럼은 엉망이었다. 내가 이를 듣게 된 경위는 취업을 위해서 들었다기보다는 졸업사정이 꼬여서 학교를 1학기 더 다녀야 하는 처지였는데 어차피 졸업하기 전에는 취직도 제대로 안될 거 부트캠프나 병행하자는 생각이었다. 덤으로 국비과정은 출결하고 자리에 앉아만 있어도 훈련장려금이라며 용돈도 나오니 말이다. (그래도 성실하게 개근했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참 가관이었던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컴퓨터공학이 주전공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공학등 여러 컴퓨터공학 정규과목을 수강하였고 빅데이터분석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입장에서 보았을 때 강사들은 대학교 정규과목으로 따지면 한 학기 이상의 수업내용이 한 달도 아닌 단 수 일에서 1~2주 만에 얼렁뚱땅 넘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강생들은 지치고 때로는 남는 시간에 내가 대신 설명하주기도 하였다.
국비 전액 지원 코딩 교육은 어쩌다 ‘청춘의 덫’ 됐을까
국비 전액 지원 코딩 교육은 어쩌다 ‘청춘의 덫’ 됐을까
교육의 수준에 대해서는 내가 들었던 KDT 어떤 한 과정뿐 아니라 부트캠프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문제처럼 보였다. 특히 위 매거진에 있는 내용처럼 커리큘럼은 수시로 변경되고 강사들끼리 공유가 되지 않으니 같은 내용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이런 형편없는 교육이 유지되는 것은 처음에 말했던 일단 수강생만 자리에 앉히면 돈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후 수강생들의 취업률은 곧 사업 실적으로 이어지니 신경을 아예 안 쓰는 것은 아니지만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해서 수강생들의 취업실적을 끌어올리는 것은 굉장히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는지 소개해주는 곳은 거의 최저임금에 가까운 형편없는 곳이다. 그들에게 있어 훈련생이 얼마나 질 좋은 곳에 취업했는지보다 말 그대로 취업을 몇 퍼센트나 성공하였는지가 실적의 척도이니 아무 데나 밀어 넣어도 상관없는 듯하였다. 그리고 수강생은 후기를 좋지 않게 남길 경우 혹시나 모를 불이익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부트캠프는 학교가 아니고
개발은 공부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문제점은 개발은 일반적인 공부와는 결이 다르다고 느껴진다. 어떤 것에 대해서 마치 수학이나 과학처럼 학문적으로 전공을 학습하고 배우는 것은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해나가면 된다. 하지만 개발, 코딩은 그 지점에 있어서 사뭇 다르다고 본다. 컴퓨터공학을 나온다고 해서 코딩테스트를 거뜬하게 통과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컴퓨터공학을 선택했으면서 졸업할 때쯤 코딩을 못하겠다고 도망가는 사람도 널렸다.
개발은 다소 감각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어떤 특정 기술을 JAVA, JSP, Spring을 배운다고 취업준비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일을 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이것들은 도구일 뿐이다. 산업마다 다르겠지만 단순히 어떤 도구나 코딩을 화려하게 사용하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제시된 요구사항을 가지고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능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을 해낼 때에 단순한 코더가 아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고 이는 교육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적성과 감각적인 부분이 존재한다고 본다.
나의 경우 코딩에 적성이 있다고 단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컴퓨터가 좋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C++을 접해보았고 (물론 책을 그저 따라 치는 수준일 뿐 이해는 하나도 하지 못했다) 중학생 때는 개인 노트북에다가 리눅스를 설치하여 이런저런 것을 따라 해보기도 하였다. 다만 학과를 정할 때는 컴퓨터공학과는 SI계열 노동자들의 괴담만 가득하기에 유망해 보이는 곳으로 골라갔을 뿐 결국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면서도 코딩이 필요한 과제는 모조리 내가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랬기에 나는 확신을 가지고 도전을 하였다. 하지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부트캠프의 광고에 현혹되어 한번 해볼까 하고 접근하였고 우연하게도 적성에 맞아 성공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내가 이런 것에 재능이나 감각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 가지 권해볼 만한 것은 나의 문제나 관심사를 코딩으로 해결하거나 도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다. 몇 가지 떠오르는 예시는 모 경제학 서적에 있는 예제를 파이썬 수학 라이브러리를 사용하여 풀고 이를 정리한 것이 호평을 받아 금융사 개발자로 취업한 경제학과 학생의 이야기가 있다. 국어국문학과를 나왔지만 언어규칙과 NLP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모 통신사 대기업의 AI개발자가 된 이야기도 있었다. 물론 이런 것은 아주 희귀하고 특수한 케이스지만 나의 바운더리 안에서 코딩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도전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만약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면 또는 만들어낼 수 있다면 적어도 개발자가 되기 위한 소양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의 내용을 모두 다시 정리해보자면 부트캠프는 짧은 시간 안에 어떤 기술을 습득하는 데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취업을 기준으로 놓고 보았을 때는 의문점이 많이 든다. 내가 정말 개발자가 되고자 한다면 부트캠프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능하다면 컴퓨터공학 전공을 듣는 것을 권장하며 (4년제라고 꼭 학교를 4년만 다니라는 법은 없으니까) 나의 관심사 안에서 코딩으로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을 가져볼 것이다. 여기까지 온다면 나머지 일은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평소 생각하던 내용이 뒤섞여 내용이 매끄럽지 못한 거 같다. 부트캠프와 취업시장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결말은 개발자는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평소 생각하던 것을 그나마 정리하여 글로 풀어보았다. 만약 여러분들이 진로나 부트캠프를 고민하고 있을 때 이 글이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https://brunch.co.kr/@danieljeong/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