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공감 X - 나도 공범이다
굵게 뻗은 가지에 풍성한 잎들. 바람이 불면 산에선 파도가 밀려온다. 수천수만 개의 나뭇잎들이 햇볕을 튕겨내는 모습은 바다의 물비늘과는 또 다른 청량감이다. 언제쯤이면 저 장면을 그럴듯하게 화폭에 담을 수 있을까? 가끔 따사로운 봄날 언덕에 이젤을 펴 놓고 멋진 풍경을 수채화로 옮겨놓는 상상을 한다.
아침에 커피 한잔을 들고 창가로 갔을 때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황사인지 미세먼지인지 온통 뿌옇다. 조금 먼발치 건물들은 형태가 어렴풋한 게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옆 나라 중국이 세계 공장이 된 후부터 줄곧 뿜어내는 때문이라 분노해 보지만, 난 알고 있다. 그 공장에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대부부의 것들도 생산하고 있다는 걸. 중국은 그저 수많은 문제들 중 하나라는 걸.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본 탓일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슈퍼 히어로가 나타나 우릴 구해줄 거라 믿는다. 이번에도 G20에서 논의한다니 어떻게 되겠지. 기술이 이렇게 발전했는데, 과학자들이 해결 못하겠어?라는 식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선언은 언제나 공허할 뿐이고 신기하게도 이 현상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당장 멈추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고 경고하지만 경제성장, 그러니까 돈 문제가 걸린 이상 개인도 기업도 정부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의 믿음이 막연했던 만큼 지금 우체통엔 큼지막한 청구서가 꽂혔다. 대구에선 바나나가 열리고 언제나 시원한 여름을 선사했던 태백에선 이제 사과농사를 짓는다. 2년이 넘게 마스크를 쓴 채 호흡을 해야 했고, 목숨을 담보로 백신을 맞아야 한다. 이쯤 되면 눈치채야 한다. 슈퍼 히어로는 오지 않는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었고 탄소제로를 위한 선언을 하며 화석연료 사용을 죄악시 하지만, 어린 시절 인천에서 자란 나는 주안역 뒤편 연탄공장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석탄가루를 또렷이 기억한다. 굴뚝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는 18세기 영국이 그랬듯 19세기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그 시절 성장을 누린 세대로서 변명을 하자면, 그때는 몰랐다. 눈과 귀로 들을 수 있는 게 실재하는 세상인데, 그게 너무 작고 좁았다. 7번, 9번, 11번 세 개뿐인 방송국 채널, 학교, 기업 이게 다인 세상인데,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경제성장'이다. 성장을 위해서는 모든 게 포기되던 시절에 근대화에 따른 녹화 정책이긴 했어도 '식목일'이 있었던 건 천만다행이다.
변명은 이만하고 늦었지만 지금 뭐라도 해야겠다.
천천히 하루를 복기해 본다. 아침에 자고 나면 더운 난방 탓에 목이 바싹 말라있고 피부도 건조해져 가렵다. 일회용 필터에 커피를 내려마신 후 테이블에 떨어진 몇 방울의 커피를 향기 나는 고급 티슈 두장으로 휙 닦아 버렸다. 시작부터 글렀다. 점심에 버린 남은 반찬이며, 필통에 꽂힌 언제 쓸지 모를 형형 색색 예쁜 쓰레기들. 저녁엔 온수를 틀어놓은 채 비누칠을 하고 영하의 날씨에도 반 팔, 반 바지를 입고 있다. 나도 공범이다.
청구서가 비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갚아야 한다. 텀블러 챙기고 집 온도 내리고 채식도 하고 물건은 미니멀하게. 사소한 일이지만 소비를 현명하게 해야 기업도 정치인도 바뀐다.
이대로 가다간 어쩌면...
내 그림에 영원히 Green이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