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와 신간 쪽 모두 사람들이 북적였고, 카드와 다이어리 매대 쪽은 몸을 비틀어 게걸음을 하지 않으면 통로를 지나가기 어려웠다.
'아니, 서점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왜 뉴스에선 매년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든다고 그러지? 이만하면 됐지 뭘 얼마나 더 읽으라고...'
코로나 시국에도 책 사겠다고 바글바글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현실과 뉴스는 늘 괴리가 있어.. '라고 중얼거리며 서점을 빠져나왔다. 날이 풀려 걸을만했다. 청계천가로 넘어가 영풍문고 쪽으로 향했다. 찾는 책이 재고가 없어 한 군데 더 들러볼 요량이었다. 청계천을 따라 길게 뻗은 길은 익숙했다.
전에 다니던 회사가 근처였는데 점심시간에 청계천을 따라 영풍문고로 가서 책을 뒤적이곤 했다. 종로 피아노거리 근처에 가끔 가던 식당이 있었는데, 거기에 들러 간단히 저녁을 때워야겠다 생각하고 한 블록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게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조그맣고 하얀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사방으로 붙여둔 테이프 한 구탱이가 떨어져 종이가 말려 올라가 있던 탓에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서너 걸음 더 다가가니 비뚜룸한 손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문을 닫습니다. 그동안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불은 꺼져 있었고 유리 안쪽을 보니 의자가 책상 위로 올려져 있었다. '아... 닫았네.' 하며 돌아서는데 건너편 상가 유리에도 '폐업', '임대문의' 같은 종이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겨우 한 블록 뒤로 왔는데, 이곳 공기는 많이 다르구나.' 생각해보니 광화문 교보문고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서점 중 하나이고, 지금은 연말연시로 북적일 때가 아닌가?
90년대까지만 해도 골목골목마다 동네 서점들이 있었지만 사라진 지 오래고, 지금은 서점뿐 아니라 수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아 시름하는데 찰나와 일면으로 모든 걸 판단하다니, 어리석었다.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얼마 전 아내와 여행했던 전주 한옥마을이 떠올랐다. 풍채가 좋은 한옥들 사이에 겸손하게 자리 잡은 작은 서점이 보였다. '살림 책방'이라는 귀여운 간판이 붙어있었다. '책방'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아내와 나는 책방에 들어가 책을 골랐다. 주인장은 '어서 오세요'라고 조용히 인사한 뒤 읽고 있던 책으로 시선을 내렸다. 유일한 손님인 우리에게 '개의치 말고 천천히 보시라'는 메시지다
한참을 뒤적였지만 딱 눈에 들어오는 책이 없었고, 읽고 있던 책이 몇 권 있었기에 찾는 걸 그만두고 아내를 바라봤다. 손에 두 권의 책이 들려 있었다. 그중 한 권은 선물이라며 내게 내밀었다. 장석주 시인의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라는 시선집이었는데, 고슬고슬한 질감의 파란색 표지가 맘에 들었다. 책 뒷면에 적혀있던 시는 '걱정마라 지금 겪는 시련은 다 농익기 위해 거쳐야 할 계절인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참 많은 문이 닫혔다. 그래서 더 간절히 바란다. 내년 봄에도 '살림 책방'의 문이 활짝 열려있기를. 그다음 해에는 훨씬 더 붉어져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