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가 갖고 싶은 아이
'아 회사 가기 싫다' 매일. 특히 월요일에는 더 그렇다. 처음 취직이란 걸 하고 출근할 때는 모든 걸 이룬 것 같았는데 10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악마와 영혼을 파는 거래를 했다는 걸. 참 일찍도 알았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진부한 말 이지만 실제로 수많은 선택의 끝에 지금의 내가 있다. 조금 지나서 안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선택은 패키지 상품이라는 것.
모든 선택에는 옵션이 붙는다. 내가 선택한건 월급,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기대와 상상, 그리고 뻘쭘하지 않게 내밀 수 있는 명함 따위지만, 새벽 기상, 매일 왕복 2시간의 출퇴근, 9 to 6의 노동시간. 퇴근해서 집에 올 때까지 12시간이 넘는 시간과 에너지가 옵션으로 따라왔다. 이걸 그 많은 사람들이 몇 십년씩 하는걸보면 돈의 힘은 대단하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겨우 4-5시간이 내 시간. 처음엔 괜찮았다. 주말엔 쇼핑도하고 아주 가끔은 휴가라는 것도 있으니까.
옵션에 '건강'이 붙기 전까지는 그랬다. 언젠가 부터 가끔씩 '이석증'을 앓았다. 이석증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우리 귀안에는 균형을 잡아주는 아주 작은 돌멩이 같은것들이 있는데 이 돌들이 제 위치에 있지 않고 빠져나오면 몸은 균형을 잃는다. 흔히 말하는 어지럼증이다. 처음엔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많을때 감기 처럼 가끔 찾아오는 정도였다. 증상이 그리 심하지도 오래 가지도 않았다. 잠깐 누워 쉬거나 약을 먹으면 낫는 정도였으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강도가 조금씩 세진다. 주기도 빨라졌다. 눈을 감아도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고,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병원에가서 주사도 맞고, 안그래도 어지러운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돌을 제자리에 넣는 이석치환술을 받고서야 눈에 촛점이 잡혔다. 아주 지독한 배멀미를 한것 처럼 속이 울렁거렸고, 증세가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미쳐버릴 것 만 같았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치료 방법도 없단다. "푹 쉬시고 스트레스 관리 하시고, 잘 챙겨 드시면서...." 더 들을것도 없다. 자기도 못하면서.
돈을 좀 적게 벌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이번엔 '퇴사'에 따라오는 옵션들이 떠올랐다. 가족들의 걱정, 명함이 없음으로 인한 뻘쭘함, 무엇보다 돈 없음으로 인해 받을 불편함... 을 넘은 고통. 뭐 하면서 살지? 하나하나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 봤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자신감이 떨어진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왜 사표를 던질 수 없는지 이유를 알겠다.
다른 어떤 선택도 좋은것들로만 가득찬 선택은 없다. 어차피 해야한다면 생의 마지막 선택이 될 수 있는 지금, 이순간 끌리는 선택을 할거다. 옵션은 상관 없다.
과자 봉지에 붙어있는 로봇 딱지가 갖고 싶은 아이에게 그 과자가 매운 겨자 맛인 게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