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공감 X세대- 여행의 권유 2
눈이 올 때가 됐는데... 날씨가 끄물끄물한 날이면 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린다. 눈이 펑펑 내리면 눈을 꾹꾹 밟으며 태백산에 오르겠다고 생각한 뒤로는 늘 하는 행동이다. 강원도 날씨를 확인하는 게 맞겠지만 왠지 여기 눈이 내리면 강원도 태백산 골에는 당연히 눈이 수북이 쌓였을 것 같다.
얼마 전 새로 등산화도 장만했다. 산에 안 간 지 오래다 보니 신발장을 정리하다 아직은 신을만한 등산화를 작년에 버렸다. 후회는 없다. 어쩌면 이럴 줄 알면서도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마음을 담아오는 데는 새 신발이 딱이다.
하지만 잔뜩 흐리기만 할 뿐 눈은 오지 않았다. 괜히 등산화와 아이젠 가방만 한번 열었다 닫는다. 뭘 기다리는 걸까? 마치 화장실이 급한데, 문은 안 열리고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볼일을 볼 수는 없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결국 눈 덮인 하얀 설산에 가고 싶은 이유는, 복잡하고 속 불편한 내 마음의 배설물을 쏟아내고 싶어서다. 산이든 바다든, 내가 머물던 장소를 떠나야 비로소 맘 놓고 마음속 오물들을 비워낼 수 있다. 살던 곳에 그런 것들을 꺼내 놓으면 내 몸에 다시 묻을 수도, 내 가족이나 친구가 밟을 수도 있다. 그걸 닦아 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아예 그 냄새에 익숙해져서 내 몸이 썩는 줄도 모를 수도 있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오물을 뱉어내면 그들도 아프다. 회사에서 그런다면 이미 중증이다.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빨리 일어나 어디든 가서 시원스레 비워내야 한다.
일상을 먹다 보면 자연스레 불만이라는 게 쌓이고 그건 주기적으로 화장실을 가듯 배설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또 여행을 떠나야 한다. 이번에 가면 시간이 걸려도 힘주어 눈을 꾹꾹 밟으며 깨끗이 비우고 와야지.
눈이 펑펑 내려 켜켜이 쌓이면 내가 뿌려놓은 어지러운 흔적들도 이른 봄 눈과 함께 사라지겠지.
그런데, 오늘은 눈이 오려나...
2021년 겨울 첫눈이 오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