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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인간 Feb 15. 2022

한중일 삼국지

세대공감 X -  진정한 국뽕에 취하고 싶다

IMF에게 돈을 받은 대가로 우리나라는 외국 자본에 시장을 열었다. 믿었던 대기업은 쪼개져 쓰러졌고, 그 자리에 '외국계 기업'이 들어왔다. 일자리가 사라진 당시 한국에서 외국계 기업은 졸업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난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3차 영어면접을 뚫고 일본 회사에 입사했다. 


한국인 부서장 한 명을 제외하고는 사장부터 임원, 부서장, 팀장까지는 모두 일본인이었다. 회사의 위치는 남대문 바로 옆. 길을 건너면 남대문시장이었고, 조금 더 들어가면 명동이다. 당시에는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많은 동네였고, 시장 상인들도, 명동 화장품 가게 호객꾼들도 연신 '곤니찌와, 이랏샤이 마세'를 외치고 있었다. 사무실에선 Sony 노트북의 위세가 지금의 맥북을 능가하고 있었으니, 국가부도사태를 맞은 한국이 또 한 번 일본에 점령당한 느낌이었다. 우리보다 한참 선진국이었던 일본 직원들의 우월감은 넘치다 못해 시건방을 떨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함께 간 나름 맛집 남산 돈가스에서 돈가스를 맛있게 먹어놓고 '이건 돈가스가 아니다'라고 했다. 저녁 회식 때 먹은 초밥도 그랬다. 하물며 사무실에서는 어땠을까? 그들의 말이 곧 진리요. 선진국의 가르침이요. 법이었다. 기술적 노하우가 있는 일에는 한국인이 철저히 배제됐고, 한국인은 승진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꾹 참고 굴욕의 세월을 견디던 어느 날, 천지의 기운이 우리에게 몰빵 되는.... 바로 그 반전의 '그날'이 왔다. 2002 월드컵! 한국 게임이 있는 날 한국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조용히 사라졌으며, 일본 게임이 있는 날은 일본 직원들이 그랬다. 그러다 일본은 16강을 끝으로 울상이 된 채 사무실을 지켰고, 우리는 그 후로도 계속 사라져 광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4강까지! 


우리가 지금 흔히 쓰는'국뽕'이란 말이 그 사건 전에는 없었다. 그다지 사용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에서 만큼은 온 국민이 치사량의 국뽕을 맞았고, 실제로 골이 터지는 순간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2002년에... 일본의 웅장했던 가슴이 한국으로 넘어왔다. 


일본 회사에서 3년을 더 다니다 이직을 했다. 이번엔 한국 회사다. '일제의 그늘을 벗어나리라' 생각하며 만세를 불렸지만, 거기서 한국의 일그러진 기업문화를 경험하면서 웅장했던 가슴이 다시 쪼그라들었다. 나름 상장회사였지만, 대표이사가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내부 직원들과 협력사에 갑질까지 하고 있었다. '이러니 IMF가 왔지.' 나는 그 꼴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뒀다. 몇 년 후 회사 대표이사가 분식회계와 횡령으로 구속됐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지만 여전히 회사는 건재했고, 회장은 지금 정계에 진출했다. 입맛이 썼다.


다음으로 간 회사는 중국계 회사다. 원래 한국 회사였는데, 중국자본에 팔려간 케이스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한국에서 개발한 Software를 중국에서 Copy 했고 그 복제품으로 중국에서 큰돈을 벌고 있었다. 한국 회사가 국제 소송을 제기하자 중국 회사는 그간 짝퉁 소프트웨어로 중국에서 번 돈으로 한국 회사 지분을 사들여 자회사로 만들어 버렸다. 중국 내수 시장이 큰 만큼 차이나 머니는 대단했다. 한국의 개발자들은 수십에서 수백억의 돈을 받고 각자의 지분을 넘겼고, 그렇게 중국 회사는 우리 회사의 대주주이자 '모회사'가 되었다. 모회사는 중국에서 사람들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CFO와 감사 정도만 중국인이었는데, 차츰 어린 중국 엔지니어들이 늘어나더니 교대로 한국 프로그래머들의 기술을 전수받아갔다. 몇 년이 지난 지금 한국 법인엔 기술은 모두 중국으로 이전된 지 오래고 이제 소수의 관리직원만 남았다. 중국에 먹힌 거다.


요즘 한국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경험한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일본의 그늘에서 이제 막 벗어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일본은 건재하고, 중국이 호시탐탐 우리 것을 뺏으려 하고 있다. 조금만 방심하면 우리 기업은 언제든 다른 나라 자본에 팔릴 수 있다. 여전히 한중일 삼국지는 진행 중이다. 중국 회사에서 나와 공공기관의 자회사로 이직했을 때는 정치인들을 비롯한 힘 있는 사람들의 취업 청탁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신문에서 고위 공직자 자녀들의 공기관 취업비리 뉴스를 보면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객관적으로 한국은 대단하다. 세계 최빈국에서 70년 만에 선진국이 되었으니,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빨리 성장한 탓일까? 안 좋은 옛 버릇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부패한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여전히 득세하는 걸 보면 한 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을 지나면서 보여준 국민들의 의식은 여전히 더 큰 가능성을 보여준다. 자정의 힘이 남아있을 거라고 굳게 믿어 본다. 


2002 월드컵이 있은지 올해로 20년이 되는 해다. 이번엔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열린다. 다시 한번 온 천하의 기운이 우리에게 몰빵 되기를 기원해 본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그 여세를 몰아 나라의 부정한 기운을 털어내기를. 


진정한 국뽕에 한번 더 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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