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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인간 Jan 06. 2022

우리는 원래 아날로그였다

공명의 파동

 "BTS의 Butter가 7주 연속 빌보드 1위를 차지했습니다. "Smooth like butter! Like a criminal undercover... " 음악이 흘러나오면 고개를 앞뒤로 흔들면서 박자를 맞춰 본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들이 "이번 무대는 정말 좋았어요"라는 감탄의 심사평을 하기 전에 나오는 예고의 몸짓이다. 


BTS나 Black Pink 같은 K-Pop그룹들이 빌보드 순위 경쟁을 하는 걸 보면 정말이지 격세지감을 느낀다. 세련된 리듬에 멋진 비주얼, 비트를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주는 칼 군무를 보고 있으면 '아...' 하는 신음 같은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어린 시절 코미디언 김병조가 진행하는 '일요일 밤의 대행진'이라는 시사풍자 코미디 프로가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최근 종영한 '무한도전' 정도의 인기를 끌던 예능프로였는데, 코너 속의 코너 형식으로 '내일 뉴스'라는 작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재구성하자면 이렇다. 앵커가 나와 '내일 뉴스를 전해드립니다. 우리 가요가 빌보드에서 1위를 차지했고 노래를 부른 가수는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팬레터에 깔려 죽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우리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라는 식의 가짜 뉴스를 전하면 그걸 듣고 헛웃음 짓게 만드는 그런 코미디였다. 코미디. 그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코미디' 였는데, 그게 현실이 됐다.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다 보니 자본 역시 그쪽으로 몰리는 모양새다. 국내에서 없었던 거대 규모의 투자가 해외에서 이루어졌고 그걸 바탕으로 엄청난 양의  K-pop과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경탄할 일이다. 


그런데 요즘 K-pop을 따라 흥얼거리다 보면 뭔가 이상한 게 있다. 가사를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영어가 많이 섞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 옛날 올드 팝송의 가사를  다 기억하는 걸 보면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클라이맥스 한두 마디를 흥얼거릴 뿐 전체적으로는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 분명 종합예술이라 할 만큼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는데, 뭐가 다른 걸까?


며칠 전 운전을 하고 가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라디오에서 '첫눈 오는 날 딱 어울리는 노래를 들려 드립니다. 이문세의 '옛사랑'...'이라는 멘트가 나옴과 동시에 어쿠스틱 기타의 전주가 울렸다. 그때 내 마음에도 공명의 파동이 일었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부드러운 멜로디와 귀에 감기는 노랫말에 저절로 몸은 좌우 그네를 타며 그 시절 그 노래를 듣던 때로 돌아간다.


요즘 음악들이 워낙 비트가 빨라 가사를 보지 않고는 들어내기 어렵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휘발성이 강한 싱글로 발표됐다가 수없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으로 찾아 듣지 않으면 어느 한곡을 반복적으로 듣고 애착을 갖기 쉽지 않다. 


BTS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고 나도 '힙'한 척 묻어가려 해 보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동시대를 살았다'라고 말하려면 10대와 20대의 감수성 풍부하던 시절을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 적어도 음악은 그렇다. 그때 깊이 새겨진 리듬에 몸이 반응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늘 다시 '옛사랑'을 들으며 인정한다.  '그래.. 난 원래 아날로그였어.' '흰 눈 내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또다시 좌우로 그네를 탄다. 




지금 듣는 노래가 '아이유'가 부른 '옛사랑'인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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