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경주국제마라톤 대회에 간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42.195km를 뛰기 전에 가능한 만큼 만큼 최대한 오래 뛰어봐야 한다는 옛 애인의 조언대로 일주일 전에 30km를 처음 뛰어보았다. 하프 마라톤 대회에 나갔을 때와 비교가 안될 만큼 힘들었지만, 10km만 더 참고 뛰면 완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대회 전날, 회사 업무가 늦게 끝나 원래 예약해둔 기차를 놓쳐 대회 당일날 서울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탔다. 지하철 첫 차가 출발하지 않을 시간이라 퇴근한 후 집에서 3시간 쪽잠을 자고 비몽사몽한 채로 따릉이를 타서 서울역에 겨우 도착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힘겹게 마라톤 대회를 나가야 하나 자괴감이 들었지만, 하늘이 맑아 따릉이를 타고 가며 홍제천에서 본 새벽 별이 예상치 못하게 아름다웠고 첫 기차를 타며 본 일출이 눈부셔 대회장으로 가는 마음을 더 설레게 해주었다.
설렘은 길지 않았다. 대회는 8시에 시작하고, 기차는 7시 20분에 신경주역에 도착하기 때문에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택시 승강장을 향해 달렸다. 기사님께 경주시민운동장으로 최대한 빠르게 가달라고 읍소했다. 무릎보호대를 차고 있는 내 모습을 본 기사님은 단번에 상황을 눈치 채셨다.
“오늘 있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시나봐요?”
몇 킬로미터를 뛰냐고 물으셔서 풀 코스를 뛴다고 말씀드리자 백미러에 비친 기사님의 눈이 토끼눈이 되었다. 오늘 처음 뛰어본다고 하자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으시며 아직 매운 맛을 못 봐서 도전하는 거란 의미심장한 신호를 보내셨다. 그 당시에는 기사님의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최 측에서 준 에너지젤을 섭취하며 도로가 그만 막혔으면 하는 초조한 마음에 앞 차만 바라보고 있었다.
대회장에 도착한 후, 인산인해한 현장에서 서둘러 짐을 보관하고 레이스 출발점에 도착했다. 몸을 제대로 풀고 싶었지만 앉아서 한쪽 다리를 뻗기도 힘들 만큼 주변에 참가자들이 많아 준비 운동을 짧게 마쳤다.
“레이스 시작 5분 전입니다!”
대회장 MC의 우렁찬 음성 때문인지 혹은 복장을 제대로 갖춘 주변 참가자들의 포스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불신은 잠깐 넣어두고 그동안 마라톤 대회에 나갔을 때처럼 잘 즐기고 오자는 마음을 먹자 한결 편안해졌다.
레이스가 시작됐다. 저마다의 속도로 달리는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기 위해 가장 오른쪽 가장자리에서 나만의 페이스로 뛰었다. 뒤에서 다른 참가자들의 마라톤 복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63 토끼 마라톤 동호회 옷을 입은 아빠뻘 참가자도 있었고, 캡틴 아메리카 분장을 하고 뛰는 코믹한 참가자도 있었다. 가장 눈에 띈 분은 자신의 가족이 탄 휠체어를 밀면서 뛰는 젊은 할아버지였다. 휠체어에 앉아 따뜻한 아침 햇볕을 맞으며 자신의 가족에게 몸을 맡긴 그분의 모습이 평온해보여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경주 시내를 지나자 드넓은 잔디밭에 봉긋하게 올라와있는 작은 왕릉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오여정’이라는 웹드라마를 본 이후로 혼자 경주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멍 때리면서 왕릉을 바라보며 러닝을 하니 이미 버킷리스트를 하나 이룬 기분이었다. 높은 건물이 없어 풍경을 볼 때도 눈이 트이는 경주의 매력에 빠지고 있었는데 러닝하는 방향이 달라지고 길목이 좁아지더니 어느덧 대릉원에 들어서게 되었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가을 하늘 아래에 유려한 능선과 붉게 물든 단풍 나무의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기차와 대회 시간을 맞추기 위해 마음 졸였던 순간은 다 잊히고 황홀한 기분만 남았다. 경주까지 와서 러닝하는 보람이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대회인 것도 잊고 풍경만 만끽하며 동시에 러너스하이를 느꼈다.
대릉원을 지나갈 즈음엔 아직 러닝에 집중할 때여서 사진이 없다. 인증 사진을 못 찍은 게 아쉽다..
벅찬 마음이 가라앉자 고통이 찾아왔다. 경주만의 특색 있는 풍경은 사라지고 낮은 등산길 같은 길목이 나왔다. 처음으로 오르막길이 나왔는데 그동안 합정 쪽 한강을 러닝할 때도 업힐이 자주 나와서 포기하지 않고 뛰었다. 하지만 10km를 지난 후, 오르막길이 두세번 더 나왔다. 뛰는 중간에 페이스와 시간을 확인하고자 삼성 헬스와 가민 워치를 비교했는데 기록이 다르게 나왔다. 대회장 곳곳에 있는 킬로미터 표지판과 비교해보니 그동안 연습할 때 썼던 삼성 헬스는 실제로 뛴 거리보다 적게는 3km, 많게는 8km까지 더 많이 측정되었다. 가민 기록대로 계속 뛸 경우 5시간 안에 완주하기 어려울 거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5시간, 즉 오후 1시까지 도착 지점까지 들어가지 못하면 그 이후에는 완주해도 공식적인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21km는 대회 직전에도 4~5번 뛰어봤지만 그 이상 뛰어본 건 한 번밖에 없었다.
21km를 넘어가니 다리에 쥐가 올라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예전에 시험기간에 한동안 러닝을 안하다가 잠수교에서 5km를 뛰었는데 처음으로 오른쪽 종아리에 쥐가 났다. 그 당시에는 잠수교 한복판에서 주저앉아 쥐를 풀고 있는 게 쪽팔리기만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고통이 심했는지 트라우마처럼 남아 이후에 러닝머신을 탈 때 쥐가 날 수도 있다는 상상이 시작되면 러닝머신에서 황급하게 내려왔다. 다행히 야외에서 평소 러닝할 때는 그런 생각이 잘 안 들었는데 이번에 10km를 넘자 주로에서 쥐가 나 길가에 주저앉아있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자 오랜만에 그 무서운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애써 그 사람들을 못 본 척 무시하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흥얼거리기도 하며 내 페이스대로 뛰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하프 거리를 넘어서니 엄지발가락이 점점 지지대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부에 러닝하던 폼과 다르게 오른 다리에 무게 중심이 더 쏠리면서 오른쪽 발가락들이 평소보다 더 벌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연습할 때와 다르게 내 몸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건너편 주로에 있는 급수대만 눈에 보이고 달리고 있는 방향에는 없었다. 25km를 지나갈 무렵 대회가 시작한 지 2시간 47분 되었다. 특정 페이스에 맞출 경우 완주가 불가능한 시간은 아니었으나 이런 몸 상태로 지금보다 빠른 페이스에 맞추어 뛸 자신이 없었다. 갑자기 내일 출근해야 할 회사 걱정이 들며 온갖 핑계거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년 봄에 서울에서 동아 마라톤이 열릴텐데 그때 다시 도전해도 안 늦지 않을까?’
결국 스스로와 타협했고, 25km 지점에서 뛰는 걸 멈추었다. 내 뒤에서 열심히 뛰고 있을 다른 참가자들에게 미안했지만 이미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던 터라 다시 뛸 마음이 없었다. 이어폰을 빼고 걸으면서 보는 경주의 가을 풍경도 예뻤다. 그냥 여행 온 셈 치고 남은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걷고 있지만 내게 응원해주는 시민분들에게도 나름 웃으면서 인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5km 이상을 걷자 어느덧 하늘에 구름이 끼고 아까 흘렸던 땀이 식으면서 날씨가 더 쌀쌀해졌다. 주변에 포기하지 않고 뛰는 사람들을 보니 자괴감이 밀려왔다. 레이스 출발점 근처에서 휠체어를 밀던 젊은 할아버지는 반환점을 돌아 반대편 주로에서 뛰고 있었다. 갑자기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10분 정도 걷고 다시 뛰는 걸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왜 아예 포기했을까. 그런 마음이 들었을 때 다시 뛰려고 시도해봤지만 이미 늦었다. 다리에 과부하가 와서 절뚝이면서 뜀박질하는 게 최선이었다.
결국 뛰는 걸 포기하고 걷다가 대회 차량에 탑승하여 도착 지점에 들어왔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처음 일한 날보다 힘들었다. 과부하가 온 몸뚱이를 끌고 신경주역으로 도로 가려는데 아직까지 배번호를 달고 자기만의 페이스로 뛰고 있는 참가자들이 보였다. 이미 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메달이나 기록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싸움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대단해보였다.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어른들의 말이 처음으로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비록 첫 풀마라톤 대회에선 완주하지 못했지만 성공한 것 못지 않게 값진 교훈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