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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 Jan 01. 2019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베트남 한 달 살기 Day 5

삐비빅! 

빵!

빵~~~~~~~~~~

며칠 전만 해도 오토바이와 차들의 경적 소리로 정신이 없었다. 

길을 걷는 중에도 카페를 가도 밥을 먹으러 가도, 들려오는 경적 소리에 어쩔 줄 몰라했다. 

숙소에 와서도 끊임없는 경적 소리에 내가 쉴 곳은 어디인가, 라는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런 내가 5일 만에 이곳에 적응했다. 아니 적응해버렸다고 하는 게 더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소음이 귀에 별로 거슬리지 않는다. 

윗집 이웃이 끊임없이 떠드는 소리가 리듬 있는 음악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첫 2일까지만 해도 하노이 소음이 원래 이 정도로 심했나, 하고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읽고 있던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고 싶었다. 

그때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맹렬히 짖어대는 경적소리는 어느새 백색소음이 되었다. 이 백색소음을 배경으로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나는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다. 

한국에 있을 때도 식당이나 술집에서 시끄러운 사람들이 근처에 앉으면 어서 빨리 그곳을 벗어나려 한다. 이웃집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공공장소에 가서는 내 행동이 남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쓸데없이 걱정한다. 친구와 같은 방을 쓰는 것도 불편해한다.

이 곳 하노이에 비하면 한국은 예민한 사람이 살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하노이의 주변 소음과 혼잡은 심하다.


그런 내가 단지 5일 만에 이곳에 적응해버렸다. 이따금씩 소음이 거슬리긴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라는 말을 어렸을 적부터 수없이 들어왔다. 

찰스 다윈은 가장 강한 사람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 생존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인류는 수십 세기 동안 냉혹한 생존경쟁을 거치며 그중 자연에 잘 적응하는 사람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조상들의 적응하는 능력은 자연스럽게 지금 우리의 유전자 일부분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머리로는 그 말을 이해하고 있어도 직접 체험하면 나 자신이 적응하는 속도에 적잖게 놀라게 된다. 그런 경험을 여행할 때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갑자기 군대 시절이 떠올랐다. 

예민하고 자기만의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내게 군대에 간다는 것은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과도 같았다. 훈련병 초기에는 동기들이 곤히 자고 있을 때도 나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일주일이 지나니 생활관을 내 방처럼 여기게 되었다. 

집이 아니고는 밖에서 큰 일을 보기 싫어했던 내가 편하게 화장실을 가게 되었다. 

그때도 인간의 적응 능력에 감탄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다.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고갈된 에너지를 충전하는 일. 새로운 시선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일. 사회에서 규정한 나를 탈피하는 일... 등 개인마다, 각 여행마다, 그 날의 경험마다 각기 다양한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우리가 가진 능력을 재발견하는 일이지 않을까. 

어떤 상황에도 적응할 수 있는 능력. 

고난을 나에게 유리하게 전환하는 능력.

그리고 나도 모르게 높게 설정한 기준을 낮추면서도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 


오늘, 지금의 이 느낌을 서울로 싸가고 싶다. 그리고 무언가에 불만을 터트릴 때마다 하나하나씩 꺼내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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