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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May 16. 2017

언제고, 습관

스틱커피를 먹고 나면 늘 배탈이 나곤 했다. 유통기한을 의심해 봉지를 뒤적여보면 숫자는 늘 현재보다 먼 미래를 띄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다음번에 또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뜨거운 물을 끓이고, 스틱가루를 넣고, 우유와 얼음을 투하시키는 일. 


아주 오래된 습관이 있다. 몫으로 들어온 모든 것들을 기록하는 일, 침대 밑 박스에는 먼지 쌓인 추억들이 한가득이다. 그곳엔 오래전 문단 사이를 전해지던 학급 설문지도 있고, 형광펜이 주욱 그어진 식단표도 있다. 나의 오랜 습관을 두고 엄마는 늘 말했다. “너 못 버리는 것도 병이야, 병”


얼마 전 친구가 이사를 하면서 100여 권의 책을 버린다고 했다. 냉큼 달라고 하곤 친구의 집에 갔다. 이사정리를 도와주며 내가 가져갈 책들을 골라 담았다. 친구는 나를 슬며시 보며 책에 관한 자기만의 역사를 넌지시 건넸다. 이제는 인연이 아닌 사람에게 받은 책과 종이 사이사이에 끼인 책갈피의 흔적들. 가져가기 위해 집어 들었던 책을 이내 놓곤, “이건 너가 가져가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렇게 말했다. 


방 한켠에는 천장 근처까지 닿아있는 나무로 된 책장이 있다. 책장에는 150여 권의 책이 꽂혀있고, 그 책들 위에는 또 다른 책들이 틈을 내주지 않은 채 빼곡히 차지하고 있다. 책을 고르고 골라 알라딘 서점에 팔기 위해 갔다. 점원은 가져간 13권의 책 중 5권을 다시 내 몫으로 돌려주며 말했다. “이 책들은 너무 많이 소장하고 있어서 더 이상 받지 않고 있어요. 나중에 다시 가져와보세요.” “그럼 돈 안 받을게요. 그냥 가져가 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 그런 건 안되고요. 음.. 그럼 버려드릴까요?” 


망설이는 내 앞에서 점원은 책을 들곤 찢는 시늉을 했다. “아, 아니요. 그럼 몇 권만 가져갈게요. 나머진 버려주세요.” 망설이며 두 권을 골라내곤 나머진 점원의 몫으로 밀어 넣었다. 북-북-하고 찢어지는 책들 사이로 나는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언젠가 소용으로 인해 생겨난 책들이 소용의 가치없음을 증명하곤 소멸하는 풍경.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마음 한쪽에 밀어 두고 가게를 나섰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옷 틈 사이로 스며들어왔다. 비워졌어야 할 가방이 조금은 묵직하게 어깨를 짓눌렀다. 가방 끈을 고쳐메곤 집으로 가는 길을 되짚었다. 때론 버리는 것 또한 내 마음을 기록하는 일임을 긍정하게 되는 순간. 나는 여전히 미련 투성이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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