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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Nov 09. 2016

월동준비

엄마가 필요로 하는 것들의 일정부분은 이모로부터 나왔다. 슬하에 4남 2녀를 둔 할머니는 엄마에게 줄 관심을 딱, 6등분으로 나눠 내보이곤 했다. 이불장사를 하는 이모는 유일한 자매인 엄마에게 겨울이 되면 극세사 이불을 보내왔고, 여름이 되면 얇은 천이불과 여러 번 갈아 끼울 베개 커버를 그 위에 얹혀 보냈다. 그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리고 나의 나이가 한 층 쌓여갈수록 그 위에 얹혀진 마음들이 나에게도 보이기 시작했다.      


시절의 곳곳마다 마음을 내주던 이들이 있었다. 그것은 상대방의 것이기도 했고, 나의 몫이기도 했다. 방어막을 치던 날이 지나면, 마음의 개방을 골똘히 생각했다. 나, 너를 이만큼 생각해-하고 활짝 펴 보인 순간 수신인은 저 멀리 달아나 머쓱한 손을 그대로 움켜쥐곤 숨기곤 했던 날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머쓱함 뒤에 감춰진 상처들은 꽁꽁 싸맸다. 웃는 낯을 제 것인 냥 들이밀고 다녔다. 그러니, 마음의 온전함이란 얼마나 상투적인 것인가, 늘 판단의 판단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내주고, 서로를 다독이는 것에 꼭 혈육이 필요하지 않음을 알려준 건 J였다. 때론 J는 이기적인 것 같기도 했고, 어떤 날은 이 아이처럼 타인에 대한 배려가 그득한 친구가 있을까, 마음에 가득차는 따뜻함을 꾸욱 눌러본 적도 있었다.      


작년 12월, J가 교환학생으로 갔던 프랑스에 갔다. 쌩껑띤이블린이라 불리던 지역은 파리에서도 40분은 지하철을 타고 가야했다. J와 나는 파리 시내를 오가며 프랑스의 겨울을 눈으로 더듬었다. 추위에 못 견뎌 J의 침대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는 날도 있었다. J는 뜨끈한 전기장판을 내어주고 자신은 나를 위해 구입한 매트위에 몸을 뉘었다. J는 나의 코고는 소리에 자다가도 문득 툭툭, 나를 쳐대었다. 그리곤 이내 다음날 미안했노라고, 슬쩍 고백하곤 했다.      


J의 방을 가득 채우던 겨울의 냄새도, J가 수업을 들으러 가 혼자 남겨졌던 자그마한 방안의 적막도, 모두 기억에 담아두자고,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저마다 겨울을 견디는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그 시절, 나의 겨울을 견디게 해주었던 건, 아마 J였을까.      


겨울을 앞두고 침대가 옷을 입었다. 이모가 보내 온 전기장판을 침대에 깔고, 그 위에 한 겹의 얇은 이불을 쌓아올렸다. 전기장판의 온도기를 이리저리 돌려본다. 어떤 날은 뜨근한 감촉에 몸과 마음을 뉘우고, 그럼에도 춥기만한 날에는 그 차가움을 견디려 몸을 부르르-떨어댈테지.      


전기장판에선 겨울 냄새가 났다. 겨울의 냄새. 파리의 거리를 활보하던 J와 내가 맡았던 냄새, 꽁꽁 얼어붙은 거리를 조심 내딛던 파리의 풍경, 쌓인 눈에 찍힌 발자국에서 나던 사람들의 발소리, 도로를 거스르며 질주하던 자전거 패달, 반짝이던 전구들과 나를 위한 요리를 해주던 J의 뒷모습까지도.     

 

겨울이다. 차가운 냄새와 꼭 함께 붙어오던, 시절의 기억들이 넘실대는. 월동 준비에 나서본다. 마음을 닫아 잠궈도, 누군지 모를 당신을 위해 내어줄 한 자락은 꼬옥 내놓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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