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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Jul 16. 2016

자음이 건네온 마음

얼마 전부터 방송국 라디오국에서 일하게 되었다. 산자락을 곁에 둔 방송국은 역에서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했고, 내려서는 7분을 꼬박 걸어 올라가야 했다. 한 여름 내리쬐는 햇볕에 얼굴이 주욱주욱 물기를 만들어냈다. 여름 날은, 꼭 쨍쨍한 햇빛이 없어도 시원하게 내리는 비에 늘 주변에 물기가 그득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멀리서 듣던 라디오와 가까이 하고 싶다는 상상은 나의 오래된 꿈이었다. 불꺼진 밤, 침대에 누워 오로지 청각에 의존한 채 저 멀리 떠드는 이들의 공간을 상상하곤 했다. 다락방에 도란도란 앉아 있는 듯한 착각에 나는 ‘그래-그래-’하곤 맞장구도 여러 번 쳐대었다. 이곳에서 나는 원고를 편집하고, 협찬사에 전화를 돌리고, 또 방송 녹음 준비를 도와주는 일을 아직까진 썩, 해내고 있다.      


일한지 2주정도 되었다. 인수인계를 해주러 온 D씨와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D씨는 말했다. “H씨가 한 사람 더 있으면 안 되죠. 그건 다은씨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구요” 그 말은 이전에 S씨가 D씨에게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H씨는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이다. 그는 덧붙였다. “똑같은 사람이 또, 있다고 상상해봐요. 너무 별로지 않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농담에 부딪힌 그 사람의 오랜 고민의 답이었다. 나는 그 말이 때를 맞추지 못해 나가떨어진 실밥같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건, 그것보다 진득히 붙어있는 원피스 밑단의 그것처럼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D씨는 곧 일을 그만둔다고 했다. 그리곤 “저 잘리는 거에요. 껄껄” 하고 웃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그저, 탄식에 가까운 소리만을 내었을 뿐이다. 2주간 새로운 사람을 여럿 접했다. 그들은 대게 내가 파악할 수 없는 말을 해대며, 또 파악이 불가할 거 같은 종류의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나는, 초짜의 기운을 물씬 풍기며 산자락에 위치한 그곳을 서성거리는 이방인처럼 보여졌을까. 매번 인사하는 사람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나를 소개해야할 타이밍은 여전히 어렵고. 그렇게.      


그날 밤, D씨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다은씨 자요?” “아니요.” “부탁이 있어요” “네네-” 긴장된 답변을 하는 내게 D씨가 내놓은 건 허무하게도 본인의 셀카 사진이었다. “나 이거 프사해도 될까요?” 나는 웃으며 그러라고 했다. 우리 메시지창을 뒤덮은 ‘ㅋ’의 향연이 어쩐지 안도의 숨을 불러일으켰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일은 이처럼 작은 자음의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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