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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May 29. 2016

밤골마을, 아카시아 꽃 냄새 가득했던 그곳에 가면

올해 들어 처음 개구리 소리를 들었다. 밤에만 유독 잘 들리는 소리는 아직은 선선한 밤 기운을 듬뿍 묻히고 있었다. 이 소리가 들리면 늘 작게 팔뚝 위에 오돌돌 하고 닭살이 돋았다. 그 감촉과 좋아하는 공기, 그리고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에 귀 기울이며 봄과 여름, 계절에 대해 생각했다. 봄은 몸을 살짝 걸치곤 여름과 바통터치를 하려나보다. 시절이 또 지나간다. 여름날엔 아카시아 꽃 냄새가 듬뿍나는 그곳 생각에 울멍한 눈을 하게 될텐데. 그러니까 그곳, 상도동 밤골마을에서 살던 시절 말이다. 


1996년 즈음이었을까. 일산에서의 기억이 7살부터이니, 아마 그랬을 것이다. 상도동 중에서도 밤골마을은 역에서 한참을 걸어올라가야 하는 달동네였다. 버스도 없고, 가로등 불빛만 더듬더듬있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나이엔 달동네란 말 자체를 몰랐으니 그저 오르막길에 발만 통통 튕기며 투정부렸던 기억만 떠오른다. 


달동네라는 말. 참 단정한 단어라는 생각을 한다. 달과 가장 가까이 있다는 말일까. 달과 동일한 방향에 있다는 것일까. 어찌 되었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 달동네라는 말을 달가워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다. 가끔, 어린 나이에도 울적한 기분이 들 때면 난간에 팔을 걸치곤 불퉁한 표정으로 빌딩이 가득한 먼 곳을 바라보곤 했다. 63빌딩이 멀리 보이는 아득한 그곳이 어찌나 멋있게도 보였던지. 울적한 마음은 갈무리 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다시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는 작은 골목이 있었다. 걸을 때마다 소리를 그대로 울려대던, 그 울림이 좋기도 두렵기도 해서 늘 빠르게 뛰게 만들었던 작은 골목. 어깨에 닿는 골목 벽의 차가운 감각으로 여름을 버티곤 했다. 


골목을 지나 몇 가구가 다닥다닥 모여 있는 공간 앞에는 돌로 된 마당이 있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 마을 아이들은 한 데 모여 땅따먹기를 하고, 멀리뛰기를 했다. 그리곤 어느 날은 다시 그 작은 골목길을 지나 내리막을 다다다-내려간 후, 마을에 유일하던 슈퍼 밤골상회 앞에 자리를 차지하곤 놀았다. 문득 우웅-거리는 소리와 눈앞을 뒤덮은 희뿌연 연기가 날 때면 아이들 귀를 종끗 세우곤 그곳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소독차의 등장을 알아채고 모두 하던 일을 중단한 채 차의 뒤꽁무니를 따르기 바빴다. 선두에 설 때마다 가까워지는 소독차의 그 차가운 냄새가 어찌나 좋던지. 나는 신발이 벗겨진 줄도 모른 채 그 뒤를 마냥 졸졸 쫓아다녔다. 지금의 반만한 나의 다리 길이는 차마 그 끝에 다다르진 못한 채 숨만 헉헉 내쉬게 만들었어도, 나는 그 소독차가 우리 마을 전체를 뒤덮는 듯한 그 상상이, 무척이나 좋았다. 


몇 남지 않은 달동네, 상도동은  지금 벽화마을로 불린다고 했다. 나는 가끔 그 시절이 생각날 때면 포털사이트에 '상도동 밤골마을'을 검색해보곤 한다. 사진에는 내가 살던 시절엔 보지 못했던 길고양이들이 한 자리 차지해 있었다. 사람들은 나의 유년시절 그곳에 서서 사진을 찍고, 이곳의 정서가 과거의 것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하는 것에 기뻐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무리에서 동떨어져 그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는 아이처럼 지켜볼 따름이다. 나의 기억과는 다른 색으로 채색되어 있을 사람들의 기억. 그것이 부럽기도 하고, 또 괜스레 나의 기억에 부루퉁한 얼굴을 짓고 싶어진다. 


그곳에선 늘 아카시아 향이 났다. 주차장과의 구분이 지어지지 않았던, 그리고 주차장 뒤는 바로 낭떠러지여였던 그곳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줄지어 심어져 있었다. 가끔, 친구들과 놀다 목이 마를 때면 아카시아 잎을 따먹곤 그 달콤함에 몸을 부르르 떨곤 했다. 


얼마전, 분당에 사는 친구 집에 갔다가 내천이 흐르는 곳에서 아카시아 향을 맡았다. 밤골마을 시절의 기억이 향과 함께 쏟아져 내렸다. 밤골마을을 다녀온지도 10년은 더 되었으니, 아마 거리에서 아카시아 나무를 본 것도 그쯤 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난 아카시아 향을 맡아도 사람들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그 잎을 훕-하고, 빨아 먹을 용기가 없다. 내가 자란 탓도 있지만, 그건 이 세계가 그만큼 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리엔 먹을 것 투성이고, 여의도만 가도 음식이 찍힌 전단지가 손에 한 가득 들린다. 그 시절, 우리의 몫이었던 아카시아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아카시아 향 가득한 그곳에 가고 싶다. 그곳에 가면 개구리 우는 소리 가득할텐데, 그리고 나는 개구리 우는 소리에 잠 못이루는 밤을 토닥이며 스르륵 잠에 빠지고 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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