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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May 18. 2016

절망에 대항하는 방법

오늘 그래서 뛸 생각을 한다

체력을 길러야겠다, 다짐한 건 얼마되지 않았다. 작년 11월, 그리 고된 일정이 아니었음에도 여행에서 늘 약골마냥 빌빌거렸다. 두명의 엄마들이 성큼성큼 앞을 향해 나아갈 때, 난 늘 그 뒤를 주춤거리며 따랐다. 이것은 비단 내가 약한 체력을 방치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분명 산 동호회를 거머쥐고 있던 정숙이란 이름의 두 엄마가 단련된 허벅지와 제대로 된 호흡의 걸음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요즘 나이가 든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우린 이제 늙어버렸어'라는 자조섞인 토로는 분명 아니다. 그런 말을 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늘 말했으니까. "나이가 든다는 게 어때서. 청춘이 별거니?" 


볼 한 켠을 차지하던 뾰루지의 흔적이 4개월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있음을 아침마다 확인하게 될 때, 긴 여행을 소화하는 것이 조금은 버거워졌을 때, 전기장판에 배를 부비고 엎드려 귤 까먹는 것이 여전히 좋음을 확인할 때, 눈화장을 할 때마다 스치는 잔주름의 걱정이 횟수를 늘여갈 때. 그럴 때 나이가 들고 있음을 느낀다. 


체력을 길러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가장 관심있게 본 운동은 '스쿼시'였다. 팡팡 올려치는 공을 따라 네모난 공간이 완성되는 것. 드라마 속 재벌들은 늘 그런 운동을 했다. 땀을 줄줄 흘리고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있는 그들은 늘 그러면서 머릿속에 뒤엉킨 상념들을 털어내곤 했다. 그것은 때론 사랑의 불길한 징조를 걷어내는 움직임이었고, 자괴감을 날리기 위한 몸부림의 일종이었다. 때문에 훗날 내가 일상의 패턴으로 선택할 것은 분명 스쿼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쿼시가 꽤 비싸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되었다. 선명한 사실에 또 다른 다짐을 덧붙였다. "취직만 하면 스쿼시부터 끊을거야!"


나이와 체력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엄마만 봐도 알 수 있다. 엄마는 등산마니아다. 주마다 모임을 갖곤 산을 오른다. 혼자서 고봉산을 오르는 것도 엄마의 오래된 취미 중 하나다. 그 개운함과 뿌듯함을 명확히 알리 없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헉헉-거리며 허리를 굽히는 나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건 지속적인 등산과 운동의 결과다. 반복되는 활동에 생겨난 등산근육은 엄마에게 익숙해진지 오래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건강한 위험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안전만을 강조하면서 위험이 완전히 제거된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있죠


최근 신문에서 조금은 특별한 놀이터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기적이 놀이터'라는 이름의 이 놀이터에는 그 흔한 그네도, 시소도 없다. 다만 가파른 비탈길과 언덕이 있을 뿐이다. 기적의 놀이터를 만든 놀이운동가 편해문씨의 말이 내내 기억에 남는다. 


이 놀이터에는 또 하나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한다. 깨진 병이나 날카로운 못과 같은 ‘진짜 위험’은 없애도록 하는 것. 어쩌면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살면서 겪을 풍파들로부터 무조건 보호하는 것 보단 맞서 견뎌낼 힘을 주는 것 일지도 모른다. 기적의 놀이터는 그런 힘으로 무장한 오롯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인 것이다. 


이걸 '면연력'의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서도 체력을 기르듯 불행에 대항하기 위한 단단한 마음을 가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민과 고통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 보다 맞서 싸우기 위한 힘을 기르는 것. 그것이다. 오늘 그래서 뛸 생각을 한다. 체력을 기르고, 단단히 마음을 무장할 생각이다. 대항하기 위한 힘을 기르는 건 어쩌면 나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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